'Digilog'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07/03/21 이어령 교수님 특강과 디지로그 책을 읽고..
  2.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19. 지식정보의 화수분, 지식IN
  3.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6. 쥐를 이기는 방법, 바이오닉스
  4.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7. 사이버 항해의 키워드 '좌우지간'
  5.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14. 소금장수가 만드는 미래형 '컴팩시티'
  6.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1. 권위의 구배 - 극지에는 꽃이 없다
  7.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 시루떡 돌리기 정 담은 정보 원리
  8.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8. 무지개 색깔을 묻지 말라 - 디지로그 교육
  9.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9. SHELL은 정보시대 약방문
  10.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16. 무한 진화 인터넷의 새 버전 '웹 2.0'

이어령 교수님 특강과 디지로그 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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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님 특강에서 느꼈던 가장 큰 감동은 이어령 교수님의 애국심입니다.

조목 조목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 한말씀 한말씀 속에는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한국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위한 애닮은 걱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 나라가 지금 이렇게 일어섰지만, 곧 필리핀과 같이 무너질 수 있겠다는 걱정.. 이 나라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 우리가 찾아봐야할 것들이 무었인지 알려야겠다는 열정.. 디지로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잊고있었던 한국적인 정서와 디지털 세계에 앞장설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워 주시는 애정..

저는 이어령 교수님의 특강을 들으면서 그분의 정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를 바라보는 듯한 정을..

그 정을 이어령 교수님의 디지로그 책에서도 느꼈습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약간의 논리적인 비약도 있었습니다. 청룡열차같은 정치를 이야기할때는 우리나라에 대한 참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떡 문화에 대하여 이야기하실때는 우리나라의 참된 정이 무었인지 느끼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령 교수님께서 특강을 통하여 우리에게 시루떡을 돌리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떡을 받아봄으로써 떡을 돌리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그 집안에 어떤 일이 있는지 알 수 있게되는 우리의 떡문화!

이어령 교수님은 우리에게 디지털 떡에 한국적인 아날로그라는 콩고물을 가득올려서 저희에게 아주 맛난 떡을 돌리신 것입니다.

우리의 떡 문화는 돌리고 돌리게 되어있습니다. 나도 떡을 받으면 언젠가는 남에게 떡을 돌리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정보는 돌아다닙니다.

디지털도 마찬가지 입니다. 디지털 정보도 우리가 돌리고 돌리면서 정보가 돌아다닙니다.이어령 교수님은 우리가 이렇게 디지로그를 서로에게 돌리고 돌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단지 디지털이 아닌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골고루 묻힌 디지로그를 돌리기를 원하신는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디지털에 어떤 아날로그를 올릴지는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이 떡을 받을 사람을 생각하는 미덕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떡 문화처럼, 저역시 제가 만드는 디지로그를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맛도 좋고, 빛갈도 좋고, 냄새 또한 죽이는 디지로그를 만들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새로운 디지털 문화에 대하여 생각해왔는데 이번 특강을 통하여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어령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 정 같이 나누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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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28. 무지개 색깔을 묻지 말라 - 디지로그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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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무지개 색깔이 몇 색이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앵무새처럼 빨.주.노.초.파.남.보를 외울 것이다. 조석으로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디지털 신호가 만들어 내는 수천 수만의 색깔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대답한다. 교실 속의 무지갯빛이 일곱 색으로 고착된 것은 순전히 뉴턴의 스펙트럼 실험 때문이다. 그 자신이 실험실 조수에게 "너도 이 빛이 일곱 색으로 보이느냐"고 물었던 것을 보더라도 단지 뉴턴이 자의적으로 그렇게 나눠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훨씬 이전의 대석학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지개 색을 네 색으로 보았고, 세네카는 다섯 색, 그리고 마루켓리누스는 여섯 색깔로 구분했다. 또 아프리카의 쇼너어족은 3색, 바자어의 부족은 청색과 황색 두 색으로 나눈다. 놀라운 것은 식물학자들도 모든 꽃 색깔을 분류할 때 바자어족처럼 청색계와 황색계의 둘로 나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1 아니면 0 이라는 양분법적 디지털 사고가 아이들의 색채 개념을 빈약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말 사전에 수록된 색채들은 빨간색만 해도 56가지가 된다고 한다. 대체 어느 나라의 말이 빨갛다와 뻘겋다를 구별하고 발갛다와 벌겋다의 차이를 나타낼 수 있겠는가. 우리는 불그레와 불그스레가 다르고, 볼그레와 볼그스레가 서로 다른 미묘한 색채의 정감을 나타낸다. 거기에 불그스름과 불그죽죽의 꼬리까지 달라지면 색깔은 걷잡을 수 없이 가지를 친다. 그러나 이렇게 풍부한 색깔문화도 이념화하면 오방색이 된다. 거기에서 음에 속하는 흑백의 무채색까지 빼고 나면 청.홍.황의 삼 태극 빛만 남는다. 그래서 서양의 교통체계가 한국으로 오면 그린(綠)사인이 청색으로 둔갑한다.

'가재는 게 편이고 초록은 동색'이라고 이념적인 편 가름을 할 때에는 작은 차이는 무시돼 원색 안에 흡수된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초록색 신호를 뻔히 눈으로 보면서도 '청색 신호등'이라고 부른다. 이념은 색맹을 만든다. 그리고 다양한 색채를 죽여 오직 한 색만을 남기려 한다.

금욕적인 청교도였던 포드 1세는 검은색 자동차만을 생산해 왔다. 미국에서 자동차 색깔이 다양해진 것은 GM사에서 시작된 일로 그 뒤 탈이념적 시대에 들어서면서 색깔 옵션은 1700여 개로 늘어났다. 거기에 비해 우리의 자동차 색깔은 100색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소비자의 성향으로 흑백이 그 주류를 이룬다. 초등학교에 교육에서도 우리는 열 가지 색(10색상환)인데 다른 나라에서는 보통 84가지를 배운다. 그래서 한국색채연구소의 한동수씨는 1000여 색을 도입한 특수 유아교육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도루묵이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디지로그 사회를 선점하려면 우선 무지개 색의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아이들에게 빨주노초파남보를 외우게 할 것이 아니라 그 색채와 색채들 사이에 있는 것들, 아직은 이름조차 지어지지 않은 경계 영역의 어렴풋한 빛깔로 눈을 돌리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한 미래의 땅 빛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커서 오직 한 색깔의 크레용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왜 크레용 상자에는 자기가 필요로 하지 않은 색깔까지 들어가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는 컴퓨터의 컬러 바와 같은 색채는 아무 데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아이들이 만나는 색깔들은 이슬과 향기에 젖어 있는 붉은 꽃송이이거나 바람이 불면 짐승처럼 웅성거리는 초록색 이파리들이거나 혹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바다의 빛들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성서의 이 한마디 말은 꼭 기억해 둬야 한다. "생선을 달라는 아이에게 누가 뱀을 주겠는가." 하물며 아이들이 달라고도 하지 않은 뱀을 그것도 독 있는 뱀을 던져 주어서야 되겠는가.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2.01 20:3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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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9. SHELL은 정보시대 약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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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SHELL은 조개도 석유회사 이름도 아니다. 소프트웨어의 S, 하드웨어의 H, 그리고 환경(environment)의 E와 인간을 의미하는 라이브웨어(Liveware)의 L자의 머리글자를 짜맞춰서 만든 항공관계의 휴먼팩터의 모델이다. 원래 버밍엄대 교수였던 앨빈 에드워즈가 만든 당시(1972)에는 라이브웨어가 하나밖에 없었던 것을 뒤에 프랭크 호킨스가 L 하나를 더 집어넣어 개선한 것이다. 본인 자신이 KLM의 기장 출신이어서 자신의 현장경험을 토대로 라이브웨어를 더 세분한 모델을 만든 것이다.

비행기를 보면 누구나 처음에는 그 기계에 정신이 쏠린다. 조종실에 들어가도 조종사는 보이지 않고 빡빡하게 들어찬 수백 개의 계기와 조종 스위치가 눈에 띈다. 그러나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나면 그러한 기계들을 움직이는 매뉴얼이나 항법지도와 같은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조종석에 조종사가 앉기 전에는 최신형 비행기도 달구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아닌 말로 라이브웨어(조종사)가 파업을 하게 되면 비행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헌신짝이다.

그렇다고 조종사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다. 부조종사와 기관사가 있고, 객실에는 스튜어디스와 승객도 있다(그래 가끔 손님 중에는 하이재커나 테러리스트가 있다). 그리고 하늘만이 아니라 지상에 있는 정비사와 회사 임원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자연히 라이브웨어는 하늘과 땅의 두 영역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하드, 소프트, 라이브의 세 웨어는 콕피트(cockpit)라 불리는 조종실의 공간과 기상과 기류 조건의 하늘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만약 그중 한 글자라도 이가 빠지거나 궁합이 안 맞으면 비행기는 그 자리에서 추락하고 말 것이다. SHELL이 HELL(지옥)이 되고 비행기는 고철로 SELL된다. 말장난을 할 때가 아니다. 실제로 1977년 3월 카나리아 군도의 활주로에서 네덜란드의 KLM과 팬암의 두 보잉-747기가 충돌해 583명이 죽었다. 항공사상 유례없는 이 대참사 이후 총제적 시점으로 비행기를 바라보는 SHELL 모델은 급속히 부상하게 된다.

사고의 원인은 농무(濃霧-E), 관제탑과의 교신 때 일어난 오해와 혼신(混信-노이즈 H-S)이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기장과 기관사의 인간관계(L, L)라는 라이브웨어였다. 이륙하려던 기장에게 기관사는 아직 팬암기가 활주로에 있을지 모른다고 귀띔을 했다. 만약 기장이 기관사의 말을 존중해 그 말을 좀 더 귀담아 들었더라면, 혹은 그 기관사가 기장의 권위에 눌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했었더라도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드웨어 중시의 사회에서 라이브웨어(인간)의 중요성을 알리는 대목이다.

그래서 SHELL 모델은 비행사고의 규명이나 조종사와 정비사의 훈련에만 유효한 모델이 아니다. 열차, 선박 등 모든 승용물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바퀴를 보면 돌리고 싶다는 시인의 말대로 승용물들은 인간의 욕망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몸, 가족 그리고 회사와 나라 역시 하나의 배나 비행기로 생각한다. 인류 전체가 분당 약 27㎞의 스피드로 회전하는 지구호를 타고 하루를 운항한다. 왜 우리는 침몰한 지 100년이 넘는 타이타닉호에 그리도 집착하는가. 왜 아이들은 은하철도와 비행접시의 환상에 빠져 있는가.

항공의 SHELL 모델을 응용하면 정보사회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그리고 디지털 환경, 라이브웨어의 내.외 다섯 요소를 총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당연히 디지로그 시대의 현상을 읽을 수도 있고 창조할 수도 있는 한국형 모델을 만들어 낼 수가 있을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사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09 20:0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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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16. 무한 진화 인터넷의 새 버전 '웹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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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그렇게 박식하고 상상력이 풍부했던 H G 웰스가 1901년에 출판한 '예상집'을 지금 읽어보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비행기'는 수송 교통수단이 될 수 없고, '잠수함'은 함장이 바다 밑에서 질식해 죽는 광경만 보일 뿐 신무기로는 쓸모가 없다고 단언한다. 물론 32년에 50년 뒤의 신문을 예상하고 쓴 기사에는 컬러 인쇄, 캐주얼한 옷의 유행, 그리고 공산주의의 몰락 등 좀 성급한 것도 있지만 그런대로 정곡을 맞힌 것도 있다. 하지만 화석 연료 대신 지열(地熱)을 쓰게 될 것이라는 예언처럼 빗나간 실패작이 많다.

그러나 '세계의 뇌(world brain)'라고 명명한 그의 '인터넷'에 대한 예언만은 아주 정확했으며, 지금 보아도 신선한 충격을 준다.

'세계의 뇌'는 제2차 세계대전의 먹구름이 일기 시작하던 때의 것으로, 예언이라고 하기보다 그의 절실한 희원이 담긴 아이디어였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지식 정보는 가속도로 늘어가고 있는데도 인류는 여전히 무지 속에 살고 있다. 그것에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이나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이 자동차와 비행기로 바뀌어도 인간의 두뇌는 마차시대에 멈춰 있다. 그래서 방대한 '정보 집배센터'를 구축해 '영구 세계 백과사전'을 만들어 잠시도 쉬지 않고 최신 정보를 기록해 세계 곳곳에 분배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동수단과 통신의 급속한 발전으로 '거리(距離)의 철폐'시대를 살면서도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해야 할 세계는 해도 (海圖) 없이 항해하는 느린 배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세계의 뇌'는 국제사회를 통합시키고 전쟁 없는 지구를 실현하게 될 것이다. '세계의 뇌' '영구 세계 백과사전'은 지구에서 가장 널리 사용하고 있는 영어로 기록될 것이며, 시시각각 수정.보충되는 정보들은 마이크로 필름에 담긴다. 그것은 세계 어느 도서관에서나 프로젝트를 통해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된다.

마이크로 필름을 디지털로, 도서관의 프로젝트를 PC의 모니터로 바꾸기만 하면 오늘의 인터넷이 된다. '세계의 뇌'에 대한 예언을 보면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평범한 말과 "미래의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묻지 말고, 미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게 된다.

이뿐 아니라 바로 지난해 5월 '팀 오레일리(Tim O'Reilly)'에 의해 태어난 web 2.0이란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2.0이라는 숫자가 암시하고 있듯이 인터넷 역시 지금까지 사용해 온 1.0과 1.5의 구 버전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하지 않고는 생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2001년 닷컴(dot com) 기업들이 버블로 붕괴해 닷컨(dot con- '사기'라는 뜻)으로 전락했을 때 모두 그런 운명을 실감했다.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세계의 뇌, 인터넷 역시 시대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끝없이 진화한다. 젊은 대학 연구원들이 신개념으로 만든 검색 사이트 구글은 오히려 그 붕괴 속에서 웹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MS.야후 등 공룡 기업을 위협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만나게 될 web 2.0은 또 다른 IT 혁명을 위한 미래 전략은 예언이 아니라 그 창조의 의지를 보여주는 신기술.신개념의 발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옆에서는 아직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것이라 하여 기피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이름이야 어떻게 붙였든 인터넷 안에선 차세대의 신생아들이 무서운 거인으로 자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당장 구글로 web 2.0을 검색해 보면 950만 건이나 나타난다. 동시에 인터넷의 대륙과 해양을 지배해 오던 제국들이 황혼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쓸쓸한 뒷모습이 보인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살펴보면 디지로그 시대의 얼굴도 보일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17 20:0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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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23. 하이브리드 카 - 새 문명을 싣고 오는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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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디지로그 시대의 징후군을 알려면 자동차의 변화를 보아야 한다. 인류 최고의 발명이라고 하는 바퀴와 함께 인간의 문명은 태어났고 (그렇다. 이 지상에는 바퀴 달린 짐승이란 없다) 그와 함께 발전해 왔다. 사람의 근력(筋力)으로 끄는 인력거, 말의 축력(畜力)으로 움직이는 마차, 그리고 증기기관의 동력혁명을 거쳐 오늘의 화석연료로 달리는 자동차-그것들은 모두가 그 시대의 의미를 비춰주는 움직이는 거울이다.


그런데 지금 고유가 시대,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는 교토의정서, 석유 자원의 고갈 등 현대 문명사회의 과제 속에서 자동차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기 때문에 석유의 대체연료를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제러미 리프킨이 예고한 '수소혁명 시대'를 기다릴 것이고, 타조처럼 시속 100㎞로 뛰어도 엔진이 과열하지 않는 무공해차를 원하는 사람들은 바이오 시대의 미래를 꿈꿀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해 아카데미상 수상식장의 코닥 극장 앞에 스타들이 몰고 온 미래형 자동차는 뜻밖에도 볼품없는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카 프리우스였다. 서양 문명은 1 아니면 0이라는 이진법적 디지털 사고로 진행돼 왔다. 자동차 역시 처음에는 전기냐 가솔린이냐를 놓고 양자 택일의 논쟁을 벌였다. 에디슨은 전기 자동차를 개발 중이었었는데 당시 사원으로 있던 포드가 "전기 자동차는 발전소 부근밖에는 달릴 수 없다"고 지적하자 깨끗이 손을 들었다. 포드는 그때 이미 가솔린 엔진 차의 다량 생산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전기와 가솔린에 대한 지식은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폭발성이 강해 등유로 쓰지 못한 가솔린은 류머티즘의 약 이외로는 위험한 무용지물로 인식되던 때였다. 만약 에디슨이 쉽게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20세기의 문명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자동차의 역사로 비춰 볼 때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or)의 택일에서 벗어나 이것과 저것 (both and)을 아우른 하이브리드 엔진의 발상은 참으로 획기적인 것이라 평할 수 있다. IT 기술이 카 내비게이션이나 엔진 제어장치로만 사용돼온 종래의 메카트로닉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1NZ-FXE형 가솔린 엔진과 1CM형 전기 모터의 병용으로 출발한 THS의 구동 유닛은 앞으로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의 기계 기술이 융합된 새 문명을 부를 것이다.

시가지를 저속으로 달릴 때에는 200V 배터리의 전기 엔진으로 주행하고 고속도로나 언덕을 오를 때에는 가솔린 엔진을 사용해 달린다. 감속시에는 운동에너지를 회수해 충전할 수 있는 회생 브레이크가 작동된다. 이 같은 하이브리드 발상으로 배출가스는 75%(일본 기준) 낮아지고 연비는 ℓ당 20~30㎞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와 같은 환경 성능으로 할리우드의 스타들 사이에 프리우스를 몰고 다니는 유행이 생겨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여러 대를 한꺼번에 구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부(富)의 파워보다 환경의 클린 파워가, 순종(純種)보다 잡종(雜種)의 감각이 프리우스의 이름 그대로 (라틴어로 ~에 앞서다의 뜻) 시대를 앞서가는 조류를 타게 된 것이다.

아직은 많은 문제점과 전체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0.3%에 불과한 프리우스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평범한 기술의 비범한 결합'이라는 하이브리드적 발상법이 바로 한국인이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특성이라는 점. 그리고 서로 다른 시스템을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기술은 88번 손이 간다는 도작(稻作)문화권의 정성이 아니면 힘들다는 점이다. 비록 남의 나라에서 먼저 개발한 차지만 디지로그 시대를 이끌어갈 한국인에게는 용기를 주는 대목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25 19:2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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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4. 인터넷 속 세 왕자와의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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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디지로그 시대의 새 물결이라고 하면 '제3의 물결' 다음에 오는 제4의 물결쯤으로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물처럼 연속적으로 흐르는 문명을 제1이니 제2니 하는 순서로 분절하는 방법 자체가 이미 구시대적인 디지털적 발상이다. 앞으로 우리가 맞게 될 디지로그 시대란 스핑크스의 난문(難問)보다도 어려운 문제를 풀 때만이 도달할 수 있다. 그 수수께끼는 먼 나라의 공주에게 청혼하러 가던 세 왕자가 우연히 길에서 만나 보물 자랑을 하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그중 왕자 한명이 천리안의 거울을 보여주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어가는 공주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순간 천리마를 자랑하던 왕자는 천리 밖 공주의 성으로 단숨에 달려가게 되고 불사약을 비장했던 왕자는 그 약초를 먹여 극적으로 공주를 살려낸다.

문제는 이 공주가 누구와 결혼을 해야 되느냐 하는 수수께끼다. 정보 마인드를 지닌 네티즌들은 당연히 천리안의 왕자를 내세울 것이고 폭주족처럼 질주하는 산업주의자들은 천리마의 왕자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 웰빙족들은 농자천하지대본의 정신으로 불사의 약초를 먹인 왕자 편을 들 것이다. 하지만 세 보물의 수퍼 파워는 서로 연동해 작용했기 때문에 어느 왕자 하나만을 골라서는 절대로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할 수 없다. 어차피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택일적 강박관념 밑에서 살아온 서양 쪽에서는 해답을 구하기 힘들므로 동양 쪽 고전을 찾아보면 어떨까. 뜻밖에도 '천평어람(天平御覽)'의 고사에서 충격적인 해답 하나를 찾아낼 수 있다.

제(齊)나라에 사는 한 처녀가 두 남자에게서 청혼을 받게 되었는데 동쪽 마을에 사는 청혼자는 돈은 많으나 얼굴이 밉고, 서쪽 마을에 사는 청혼자는 얼굴은 잘났지만 가난해 먹을 것이 없다고 했다. 이 가운데 누구를 택하겠느냐는 부모의 말에 그 소저는 선뜻 두 곳으로 다 가겠다고 대답을 한다. 밥은 부잣집 동쪽 남자에게로 가서 먹고, 잠은 잘생긴 서쪽 남자와 자면 된다는 것이다.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으로 알려진 이 이야기가 얼마나 황당했으면 뒤에 떠돌이를 뜻하는 말로 와전돼 내려왔겠는가. 이 동서 병합의 모순논리를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해 보면 틀림없이 에러 메시지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동가식서가숙'의 모순논리는 인터넷 사이버 세상에선 보통 일어나는 일이고 오프라인의 현실에서도 곧잘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이다. 아니다. 그것은 제3의 물결 다음에 오는 현대문명의 출구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아날로그적인 것은 악이고 구식이고, 디지털적인 것은 선이고 첨단이라는 양자택일의 틀이 무너지고 있다. 비트와 아톰, 클릭 산업과 브릭(brick) 산업,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이 모든 대립은 깨끗하게 금이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혼류(混流)하고 융합되고 충돌하면서 병존해간다. 이종 결합의 하이브리드나 원 소스 멀티 유스와 같은 말이 그 단편적인 징후를 보여준다.

해답과 선택은 오직 하나라는 종래의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비로소 공주는 세 왕자와 결혼할 수 있다. 그리고 불사의 약초가 지닌 생명력, 천리마의 산업적 동력, 그리고 천리안의 정보의 힘은 프랑스의 3색기와 같은 평행선이 아니라 서울 올림픽 로고였던 3태극마크처럼 둥글게 둥글게 얽혀서 돌아가야 한다. 시루떡 정보가 '탠지블 미디어'로 부상하고 젓가락 정신과 기술이 관계기술(RT)의 원천으로 각광받는 세상이다.

어려운 이야기 할 것 없다. 이 지구상에서 농경-산업-정보 세 문명의 왕자를 동시에 데리고 사는 유일한 공주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 한국인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엊그제까지 나물 캐던 채집시대에서 초고속 정보시대의 선두에 서 있는 나라, 망신스럽기도 하고 한없이 자랑스럽기도 한 이상한 나라, 붉은 악마가 외치던 대~한민국이다.

이어령 중앙일보사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03 19:2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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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30. 엇비슷한 세상 건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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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엇비슷이라는 한국말을 알면 미래의 세상이 보인다. '엇비슷'의 '엇'은 '엇박자'의 경우처럼 서로 다른 것들의 이질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비슷'은 더 말할 것 없이 엇과 반대로 같은 것의 동질성을 의미한다. 이렇게 다른 것과 같은 것의 대립 개념을 하나로 결합시킨 것이 한국 고유의 '엇비슷'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엇'은 1과 0의 디지털과 같고 '비슷'은 일도양단으로 끊을 수 없는 연속체의 아날로그와 같다. '엇비슷'에서 '엇'만 보는 사람이 디지털인이고 '비슷'만 보는 사람이 아날로그인이다. 양자를 함께 보는 인간만이 디지로그의 미래형 인간이 된다.

디지로그형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시골 아이들에게 "너의 어머니 어디 가셨니?"라고 물어보면 안다. 일본과 중국 애들은 외출했다고 하고, 영어를 하는 아이들은 "쉬 이즈 아웃"(밖에 있다)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 아이만은 "나들이 가셨어요"라고 할 것이다. 나들이는 '나가다'와 '들어오다'의 대립어를 한데 합쳐놓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어머니의 외출은 '나가면서 동시에 들어오는 행위'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가출이다. '지금' '여기'의 시점에서 벗어나 차원이 다른 눈으로 보면 분명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은 하나다.

단군 할아버지에 대해 물어보면 이번에는 "곰이 사람이 돼 하늘님 아들과 결혼하는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명쾌한 것을 어른들은 그동안 얼마나 복잡하게 답하려고 했는가. 지상에 있는 곰은 '검'고 하늘의 환웅은 '환'하다. 곰이 동굴의 어둠이며 밤이라면 환웅은 빛이며 대낮이다. 곰은 낮은 땅에서 올라가고 환웅은 높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높고 낮은 것, 열린 것과 닫힌 것, 그리고 빛과 어둠이 결혼한 자리에 엇비슷한 세상 신시가 열린다. 너무 가까운 것끼리는 결혼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둠과 빛 사이에서 단군의 새벽은 탄생한다. 그리고 좁은 동굴과 무한한 하늘이 합쳐 아사달의 공간을 만든다. 그것을 우리 어린 것들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 곰이 사람이 되는 이야기다. 곰은 그냥 곰으로 있는 것(being)이 아니다. 무엇인가가 되는 생성물(生成物.becoming)이다. "내가 돌이 되면 돌은 연꽃이 되고 연꽃은 호수가 되고, 내가 호수가 되면 호수는 연꽃이 되고 연꽃은 돌이 되고"라는 미당의 시 구절은 영원히 생성되면서 순환하는 단군의 이야기와 같다. 밤이 아침이 되고 아침은 대낮이 되고 대낮은 황혼의 저녁이 되면서 밤이 된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사람을 평가할 때도 '사람이 됐다' '못됐다'고 한다. 한국 음식 역시 '있는 맛'이 아니라 입안에서 '되는 맛'이다. 씹어야만 비로소 싱거운 밥과 짠 김치가 한데 어울려 김치맛이 되고 밥맛이 '된다'. 그러니 누가 김치맛과 밥맛을 따로 분간할 수 있겠는가.

"군(君)다이 신(臣)다이 민(民)다이"라고 노래한 충담사(忠談師)의 안민가 역시 '되다'의 세계를 읊은 것이다. '다이'란 말은 '답다'로 '되다'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곧 '대통령다워진다'는 말이고 한국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한국인다워진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람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누구나 위급한 일을 당하면 "사람 살려"라고 외친다.

일본 사람처럼 그냥 '살려(助けてくれ)'가 아니라, 서양 사람처럼 '나 살려(help me)'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라는 것이니 어디에서나 통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다. 이 지상에는 천만 가지 구호가 있지만 한 마디로 줄이면 사람과 그것을 살리는 생명문제일 것이다. 사람을 살리면 디지로그 시대가 오고, 컴퓨터를 못하는 노인도 더 이상 구박받지 않는 세상이 '된다'. 젊음의 열정은 엔진은 돼도 방향을 잡는 키가 되기는 어렵다. 사이버의 본뜻이 '키잡이'이듯이 배가 좌충우돌할 때 희망의 땅으로 갈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기성세대다.

그러나 강을 다 건넜으면 타고 온 뗏목은 버려야 한다. '되다'는 말 못지않게 버리란 말을 잘 쓰는 한국인이 아닌가. 잊어버리고 놓아버리고 내버리라고 하지 않는가. 무거운 뗏목을 메고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혼하는 저 신시(神市)의 땅으로 갈 수 없다. 눈물 나게 배고팠던 이 민족에 경제성장의 기적을 만들어 준 자랑스러운 주역들, 짐승처럼 억압받고 살던 사람들에게 민주화의 빛을 밝힌 용감한 주역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을 버려야 또 하나의 새벽이 온다. 천방지축 달리는 위험한 아이들도 의젓한 어른이 '되어' 이 강가로 올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뗏목을 골라 강을 건널 것이다. 그날을 위해 나도 이제 이 글을 메지 않고 이곳에 버리고 간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디지로그’ 말말말

"디지털 세대들은 실제로 씹는 습관을 잃어가고 있다. 정보시대의 아이들은 클릭 하나로 삶의 문제들을 씹지 않고 삼켜버렸다." <1월 1일자 1회>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사람을 즐겁게 하는 악기로 반전시키는 것. 그것이 기술문명의 방향이요 희망이다." <1월 3일자 3회>

"이 지구상에서 농경-산업-정보 세 문명의 왕자를 동시에 데리고 사는 유일한 공주가 있다면 바로 한국인이 아니겠는가." <1월 4일자 4회>

"만약 우리의 뇌와 그 인지 시스템이 1이나 0 하나만 틀려도 절대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 디지털 언어로 돼 있었더라면 "문 닫고 들어오라"는 말을 절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1월 12일자 11회>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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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11. 컴퓨터와 인간의 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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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컴퓨터를 향해서 "야! 이 똑똑한 바보야"라고 호령할 수 있는 사람은 완고한 노인만이 아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보다 오히려 컴맹 쪽이 더 정상이다. 원래 인간은 아날로그적이고 컴퓨터는 디지털적으로 그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PC는 인간이 쓰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까다롭고 모양도 정을 붙일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러한 주장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미국 인지과학회 회장이었던 D A 노먼이 한 소리이다. 인간이 수백만 년 동안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생물적 진화'를 해왔다면 컴퓨터는 실험실이나 공장의 환경에서 '기계적 진화'를 수행해 왔다. 전기 스위치를 넣자 필라델피아 도시 전체의 가로등이 껌벅거렸다는 애니악의 그 집채만 한 컴퓨터가 단추만 한 건전지 하나로 움직이는 모바일 컴퓨터로 진화했다. 그런데도 자판만은 옛날 그대로라는 비웃음을 사게 된 것도 그 진화의 배경이 다른 데서 오는 비극이다.

컴퓨터와 인간을 연결시키는 인터페이스(자판)는 어느 한쪽의 진화만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영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A'자를 제일 작고 약한 새끼손가락으로 찍어야만 하는 바보짓을 대물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비극을 노먼은 "인간이 디지털 세계에 갇혀 있는 아날로그적 생물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자연 속에서 진화해온 인간은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고 끈질기다. 그런데 컴퓨터는 인간에게 엄격하고 딱딱하고 비관용적인 것을 요구하는 기계적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시스템이 전연 다른 인간과 컴퓨터는 상보적인 인터랙션 전략을 통해서만 공존이 가능하다. 교육헌장의 표현대로 우리는 '기술 중심의 제품에서 인간 중심의 제품'을 만드는 인류중흥의 빛나는 시대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노먼이 말하는 차세대의 '보이지 않는 컴퓨터'란 디지털의 컴퓨터와 아날로그의 인간이 서로 만나 디지로그의 유전자를 지닌 새 아이를 낳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어떤 컴퓨터인지는 모르나 자신의 저서 속에서 제시한 인지과학의 퀴즈문제를 풀어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문제는 대홍수 시대의 모세는 동물을 몇 쌍씩 방주에 넣었을까 하는 물음이다. 하지만 이 퀴즈의 어려움은 한 쌍이든 두 쌍이든 어떤 숫자를 대도 정답이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노아'를 '모세'라고 한 질문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웬만한 사람들은 속는다. 방주에 넣은 동물의 짝수에만 신경을 쓰다가 노아를 모세라고 한 잘못에 대해선 눈치를 채지 못한다. 인간의 두뇌는 컴퓨터와 달라서 큰 차이가 아니면 대충 넘어가도록 되어 있다. 모세도 노아도 모두가 구약시대의 인물이고 글자 수도 두 자로 돼 있어 비슷하다. 만약 모세가 아니라 '클린턴'이라고 했다면 금세 잘못을 알아챘을 것이다. 노아를 모세라고 잘못 말하는 것도 인간의 특성이요, 그렇게 잘못 말해도 그냥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것 또한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넉넉하고 관대한 인간의 인지력이야말로 생존에 필요한 귀중한 능력 가운데 하나다.

놀랍지 않은가. 만약 우리의 뇌와 그 인지 시스템이 1이나 0 하나만 틀려도 절대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 디지털 언어로 되어 있었더라면 "문 닫고 들어오라"는 말을 절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밥도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육안이 현미경의 시스템과 다르게 되어 있기 때문에 웬만한 균이 있어도 즐겁게 시원한 냉면을 먹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이어령 중앙일보사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11 20:4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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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18. 사이(間) 문화가 낳은 싸이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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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맥주는 개화기 때 서양에서 들어온 술이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오면서 그 병 크기가 배로 커졌다. 혼자서 자작을 하는 서양 사람과 반드시 서로 술을 따라주며 대작하는 한국인의 술 문화가 달랐기 때문이다. 혼자 마시든 여럿이서 건배를 하든 서양 사람들의 술잔은 항상 자기 앞에 놓여 있다. 하지만 한국인의 술잔은 너와 나 사이에 있다. 영어로 흥을 인터레스트라고 하는데 그것 역시 사이(inter)에 존재한다(est)는 뜻이니 잔은 사이에 있어야 신명이 난다.

술뿐이겠는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 남편과 아내 사이, 그리고 친구 사이, 연인 사이 한국인은 '사이'에서 존재하다 '사이'에서 죽는다. 그래서 생존의 삼대 축인 인간(人間).시간(時間).공간(空間)에는 모두 사이 '간(間)'자가 들어 있다.

'생각의 지도'를 쓴 리처드 니스벳의 실험 결과에도 나타나 있듯이 사물을 볼 때 서구 학생들은 개체를 보는 데 비해 아시아의 학생들은 개체와 개체 간의 관계를 본다. 그래서 아시아의 경제발전을 인간 사이의 끈적끈적한 정분으로 풀이한 학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아시아의 부패와 경제성장의 장애요소로 중국의 콴시(關係)처럼 연고주의.정실주의를 드는 연구가도 있다.

평가를 어떻게 하든 한국의 '사이(間)'란 말을 세게 하면 '싸이'가 되어 그 순간 엄청난 인터넷의 폭발력이 생기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촌 맺기의 핵심 아이디어로 인터넷 인구의 절반을 휩쓴 싸이월드의 위력은 바로 한국의 '사이 문화'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사자들도 '싸이월드'를 '사이좋은 세상'이라고 표명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말로는 '사이'가 되고 영어로는 사이버의 '싸이(cy)'이다.

앞에서(17회) 설명한 것처럼 인터넷의 익명 관계를 오프라인의 '아는 사람'(연고 관계)으로 바꿔가는 추세로 한국은 서양보다 훨씬 유리한 풍향을 맞게 된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같은 아이디어로 출범한 '식스디그리 닷컴'(1997년)이 문을 닫게 되는 그해 (2001년) 거의 같은 시각에 한국의 싸이월드는 월간 1억 페이지뷰의 경이적인 세계기록을 세웠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겨우 1년 조금 지난 최단기간에 이룩한 믿기지 않은 폭발력이다. 같은 비즈니스 모델인데도 한국의 '사이 문화' 때문에 배로 커진 맥주병 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사이' 문화가 낳은 '싸이'는 차가운 인터넷, 핏발 선 인터넷, 그리고 모두들 가면을 쓰고 광란의 춤을 추는 인터넷 카니발의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가면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 그대로다. 따뜻하고 정감이 스며 있는 아름다운 인터넷, 카니발 광장은 정다운 친구를 맞이한 미니 룸이 된 것이다. 너와 나 사이를 위해 양탄자를 깔고 벽지를 바르고 신데렐라 마차같이 팬시한 실내장식 아이템들을 장만하려고 사이버 머니의 도토리를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한 개 100원 하는 도토리의 하루 평균 매출이 250만~300만 개로 3억원 가까이 팔려 경제적 효과도 크다. 거기에 배경음악, 스킨과 같은 것을 장만하기 위해 거래되는 싸이월드의 총도토리 수는 한국 전역의 숲에 있는 도토리 수보다도 많단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싸이질'이라는 신드롬까지 생겨났으며 일촌 맺기의 촌수는 10대의 소녀에서 젠더와 연령의 벽을 넘어 전국으로 퍼졌다. 한국 인구의 3분의 1이 싸이월드의 인간띠를 만들어 내는 사회적.문화적 효과다.

잠잘 때도 서로 손을 잡고 잤다는 끈끈한 형제애와 그 구식 자전거 기술이 인간 최초의 비행기를 날게 한 것처럼(6회) 우리의 뚝배기 같은 촌스러운 '사이' 문화가 최첨단의 인터넷 '싸이' 문화를 날게 한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19 19:1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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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25. 숨겨진 수염을 찾아라 태극무늬의 비전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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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긴 수염을 기른 노인이 길을 가는데 어린아이가 쫓아와 물었다. "주무실 때는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세요? 빼고 주무세요?" 할아버지는 한참 생각해 봤지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오늘 밤 자 보고 내일 일러 주마. 잠자리에 든 노인은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잤지만 답답한 생각이 들어 꺼내 놓고 잔다. 그러자 이번에는 허전한 생각이 들어 다시 이불 속에 넣는다. 노인은 밤새도록 수염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지금까지 어떻게 하고 잠을 잤는지 끝내 아이의 질문에 답변하지 못했다.

관운장 수염으로도 알려진 이 일화는 외국인이 태극기에 대해 질문할 때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제임스 콜린스와 제리 포라스 두 교수가 쓴 경영학 저서('Built to Last')에서 장(章)마다 찍힌 태극 아이콘을 발견했을 때의 그 당황스러운 느낌도 그런 것이다.

두 교수는 '변화냐 안정이냐, 신중이냐 모험이냐, 저 코스트냐 고품질이냐, 가치 존중의 이상주의이냐 이익 추구의 현실주의냐' 라는 여덟 개의 대립 항목을 만들어 100년간 미국 기업들의 행태를 분석.조사해 봤다. 그 결과 그들이 알아낸 것은 100년 동안 지속적으로 번영.발전해 온 기업들은 모두가 태극 모양의 비전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or의 억압'에 굴복한 기업은 흥하다가도 금세 소멸해 버리고, 반대로 이것과 저것을 함께 지닌 'and의 능력'을 가진 회사는 100년의 번영을 누렸다.

역설적인 생각을 피하거나 모순되는 힘과 생각을 동시에 추구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A 아니면 B의 택일적 사고에 의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윈-윈'전략처럼 A와 B의 양극을 동시에 추구해 성취한 기업들은 음의 꼬리에 양의 머리가 오고 양의 꼬리에는 음의 머리가 이어져 돌아가는 태극 모양을 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이 두 개의 대립을 하나로 합쳐 그 중간을 취하는 절충이 아니라 모순되는 쌍방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 동시에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태극의 음양과 같은 힘이라고 설명한다.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해병대는 해군과 육군을 그냥 혼성한 집단이 아니다. 바다냐 육지냐의 택일이 아니라 바다에서도 육지에서도 동시에 싸울 수 있도록 한 양서류(兩棲類) 같은 신개념에서 태어난 유니크한 군대 조직인 것이다. 그래서 경영 마인드에 '태극 무늬를 단 기업(비저너리 컴퍼니)'들은 동서 가릴 것 없이 해병대처럼 강하다.

공자는 너무 옛날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새롭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H 핑가레트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서양 사람들은 어떤 의무가 서로 충돌할 때 그중 하나를 선택하려 들지만 공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논어'에서 양을 훔친 아버지의 고사를 통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또 양자론 연구의 공적으로 귀족의 작위를 받게 된 닐스 보어도 자신의 이론을 보여 주기 위해 태극 문장을 단 예복을 입고 식장에 나타났다. 태극 도형 둘레에는 'CONTRARIA SUNT COMPLEMENTA'라는 라틴어가 적혀 있었다. 대립(對立)하는 것은 상보(相補)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IMF, e-커머스의 버블, 그리고 반기업 정서의 도전들은 한국 기업들의 수염에 대한 질문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or의 억압'을 'and의 능력'으로 바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음양 상보하는 태극 마크를 비전으로 삼는 것- 그것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28 05:0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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