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log'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07/03/21 이어령 교수님 특강과 디지로그 책을 읽고..
  2.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11. 컴퓨터와 인간의 궁합
  3.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19. 지식정보의 화수분, 지식IN
  4.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7. 내 손목시계 어디로 갔나
  5.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3. 젓가락 기술의 바탕은 RT
  6.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8. 소 잃은 외양간 SHELL로 고친다
  7.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16. 무한 진화 인터넷의 새 버전 '웹 2.0'
  8.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4. '아노토 펜' 이 붓 문화 살린다
  9.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5. 청룡열차를 탄 한국인들
  10.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13. 배달부의 초인종은 클릭 소리보다 크다

이어령 교수님 특강과 디지로그 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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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님 특강에서 느꼈던 가장 큰 감동은 이어령 교수님의 애국심입니다.

조목 조목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 한말씀 한말씀 속에는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한국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위한 애닮은 걱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 나라가 지금 이렇게 일어섰지만, 곧 필리핀과 같이 무너질 수 있겠다는 걱정.. 이 나라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 우리가 찾아봐야할 것들이 무었인지 알려야겠다는 열정.. 디지로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잊고있었던 한국적인 정서와 디지털 세계에 앞장설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워 주시는 애정..

저는 이어령 교수님의 특강을 들으면서 그분의 정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를 바라보는 듯한 정을..

그 정을 이어령 교수님의 디지로그 책에서도 느꼈습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약간의 논리적인 비약도 있었습니다. 청룡열차같은 정치를 이야기할때는 우리나라에 대한 참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떡 문화에 대하여 이야기하실때는 우리나라의 참된 정이 무었인지 느끼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령 교수님께서 특강을 통하여 우리에게 시루떡을 돌리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떡을 받아봄으로써 떡을 돌리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그 집안에 어떤 일이 있는지 알 수 있게되는 우리의 떡문화!

이어령 교수님은 우리에게 디지털 떡에 한국적인 아날로그라는 콩고물을 가득올려서 저희에게 아주 맛난 떡을 돌리신 것입니다.

우리의 떡 문화는 돌리고 돌리게 되어있습니다. 나도 떡을 받으면 언젠가는 남에게 떡을 돌리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정보는 돌아다닙니다.

디지털도 마찬가지 입니다. 디지털 정보도 우리가 돌리고 돌리면서 정보가 돌아다닙니다.이어령 교수님은 우리가 이렇게 디지로그를 서로에게 돌리고 돌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단지 디지털이 아닌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골고루 묻힌 디지로그를 돌리기를 원하신는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디지털에 어떤 아날로그를 올릴지는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이 떡을 받을 사람을 생각하는 미덕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떡 문화처럼, 저역시 제가 만드는 디지로그를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맛도 좋고, 빛갈도 좋고, 냄새 또한 죽이는 디지로그를 만들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새로운 디지털 문화에 대하여 생각해왔는데 이번 특강을 통하여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어령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 정 같이 나누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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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11. 컴퓨터와 인간의 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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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컴퓨터를 향해서 "야! 이 똑똑한 바보야"라고 호령할 수 있는 사람은 완고한 노인만이 아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보다 오히려 컴맹 쪽이 더 정상이다. 원래 인간은 아날로그적이고 컴퓨터는 디지털적으로 그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PC는 인간이 쓰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까다롭고 모양도 정을 붙일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러한 주장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미국 인지과학회 회장이었던 D A 노먼이 한 소리이다. 인간이 수백만 년 동안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생물적 진화'를 해왔다면 컴퓨터는 실험실이나 공장의 환경에서 '기계적 진화'를 수행해 왔다. 전기 스위치를 넣자 필라델피아 도시 전체의 가로등이 껌벅거렸다는 애니악의 그 집채만 한 컴퓨터가 단추만 한 건전지 하나로 움직이는 모바일 컴퓨터로 진화했다. 그런데도 자판만은 옛날 그대로라는 비웃음을 사게 된 것도 그 진화의 배경이 다른 데서 오는 비극이다.

컴퓨터와 인간을 연결시키는 인터페이스(자판)는 어느 한쪽의 진화만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영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A'자를 제일 작고 약한 새끼손가락으로 찍어야만 하는 바보짓을 대물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비극을 노먼은 "인간이 디지털 세계에 갇혀 있는 아날로그적 생물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자연 속에서 진화해온 인간은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고 끈질기다. 그런데 컴퓨터는 인간에게 엄격하고 딱딱하고 비관용적인 것을 요구하는 기계적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시스템이 전연 다른 인간과 컴퓨터는 상보적인 인터랙션 전략을 통해서만 공존이 가능하다. 교육헌장의 표현대로 우리는 '기술 중심의 제품에서 인간 중심의 제품'을 만드는 인류중흥의 빛나는 시대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노먼이 말하는 차세대의 '보이지 않는 컴퓨터'란 디지털의 컴퓨터와 아날로그의 인간이 서로 만나 디지로그의 유전자를 지닌 새 아이를 낳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어떤 컴퓨터인지는 모르나 자신의 저서 속에서 제시한 인지과학의 퀴즈문제를 풀어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문제는 대홍수 시대의 모세는 동물을 몇 쌍씩 방주에 넣었을까 하는 물음이다. 하지만 이 퀴즈의 어려움은 한 쌍이든 두 쌍이든 어떤 숫자를 대도 정답이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노아'를 '모세'라고 한 질문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웬만한 사람들은 속는다. 방주에 넣은 동물의 짝수에만 신경을 쓰다가 노아를 모세라고 한 잘못에 대해선 눈치를 채지 못한다. 인간의 두뇌는 컴퓨터와 달라서 큰 차이가 아니면 대충 넘어가도록 되어 있다. 모세도 노아도 모두가 구약시대의 인물이고 글자 수도 두 자로 돼 있어 비슷하다. 만약 모세가 아니라 '클린턴'이라고 했다면 금세 잘못을 알아챘을 것이다. 노아를 모세라고 잘못 말하는 것도 인간의 특성이요, 그렇게 잘못 말해도 그냥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것 또한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넉넉하고 관대한 인간의 인지력이야말로 생존에 필요한 귀중한 능력 가운데 하나다.

놀랍지 않은가. 만약 우리의 뇌와 그 인지 시스템이 1이나 0 하나만 틀려도 절대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 디지털 언어로 되어 있었더라면 "문 닫고 들어오라"는 말을 절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밥도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육안이 현미경의 시스템과 다르게 되어 있기 때문에 웬만한 균이 있어도 즐겁게 시원한 냉면을 먹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이어령 중앙일보사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11 20:4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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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19. 지식정보의 화수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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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은 디지털 정보시대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인터넷 정보의 바다에선 구슬(DB)은 '꿰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해일속(滄海一粟)이란 말 그대로 구슬보다 작은 좁쌀 알을 찾아내는 검색시장에서 패권을 잡은 것이 그 유명한 '구글'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구글이 한국에 오면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처럼 되고 만다. 미국에서는 인터넷 사용자의 39.8%를 차지하고 있다는데 한국에서의 검색시장 점유율은 겨우 1.6%다. 한국 토종 1위 네이버의 68.72%에 비하면 턱도 없는 숫자다(코리안 클릭 조사 2005년 12월 기준).

물론 숫자만 가지고 단순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네이버의 경쟁력은 검색엔진의 기술이 아니라 그 문화 마인드에 있다는 사실이다. '검색'이라 하면 구글이나 야후처럼 이미 인터넷 웹 페이지에 있는 자료(DB)들을 찾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네이버는 '있는 정보를 찾아 주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만들어 주는' 검색 방식을 택한다. 한글 DB는 영어로 된 자료에 비해 빈약하다. 그래서 이미 존재하는 콘텐트에 의존하기보다 사용자들이 서로 질문하고 답변하면서 만들어가는 맞춤식 대화형의 '지식IN' 같은 DB 생성 프로젝트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H G 웰스의 '세계의 뇌'(16회 참조)를 닮은 백과사전이 생겨나 분초 단위로 증식하면서 지식정보의 화수분 단지 노릇을 한다. 하루 평균 질문이 3만5000건, 답변이 6만5000건이라는 경이적인 숫자 뒤에는 남을 가르쳐 주고 싶어하는 한국인의 독특한 지식 풍토도 가세하고 있다. '무식하다'는 게 욕이 되고 '무식이 죄'가 되는 선비의 나라에선 4000만 명이 다 선생이 되고 비평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다. 더구나 익명사회의 인터넷 세상에서는 얼굴을 가릴 필요 없이 당당하게 무식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다. 그래서 오늘의 지식인은 밖(out)에서 지식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지식 안(in)에 들어와 그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지식in(人)이 된다. 그것은 편집자가 항목(엔트리)을 정하고 권위자에게 의뢰해 집필을 하는 브리태니커형도 아니며 같은 개방 참여형이면서도 정답만을 올려 한 치의 오류라도 생기면 웹 전체가 발칵 벌집이 되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와도 다르다.

그 자원과 원천 기술은 한국의 품앗이나 계 모임처럼 서로 돌려가며 지식 재산을 모으고 공유하는 한국 전통 문화에서 온 것이다. 한마디로 IT를 RT(3회 참조)로 발전시킨 한국형 젓가락 네트워크의 산물이다. 그래서 아는 체하거나 틀린 대답을 해도 흉이 아니다. 틀린 답도 정보다. 때로는 그것이 맞는 정답보다 더 재미있고 요긴하게 쓰일 때도 많다. 네트워커들은 게임감각으로 여러 답 가운데 가장 잘 맞힌 답을 골라내 점수를 얻는다.

다른 나라에서는 필요 없는 국물은 단무지처럼 씻어 내버린다. 이를 테면 필터링 기술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국물을 그대로 두어 빡빡하지 않은 음식 맛을 낸다. 그래서 "국물도 없다"는 말은 욕이다. 틀린 대답도 삭제하지 않고 그냥 놔두어 그 빡빡한 인터넷 공간에 인간미를 돋운다. "전화 말고 휴대전화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무려 1300여 개의 해답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가 지금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다원적이며 복합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한 가지 코드밖에 모르는 사람들보다 얼마나 똑똑한 백과사전인가.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20 19:2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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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27. 내 손목시계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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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동창(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의 남구만(南九萬)이 쓴 옛시조는 농경사회의 시간의식을 잘 보여준다. 동창이 시각의 시간이라면 노고지리는 청각의 시간이다. 같은 자연시(自然時)라도 청각적인 시간의 연속성이 훨씬 더 아날로그적이다. 그러나 그 시조가 산업시대로 오면 '학교 종이 땡땡땡'의 동요로 바뀐다. '소 치는 아이'를 '초등학교 학생'으로 바꾸고, '밭갈이'를 교과서의 '글 갈이'로, 시간을 걱정하는 '할아버지'를 '어머니'로 대입하면 완벽한 문명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무엇보다 '노고지리'와 '학교 종'은 아날로그적 시간과 디지털적 시간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노고지리 소리를 듣고 어서 일어나 밭을 갈라는 말과 학교 종소리를 들으며 어서 모이자는 것은 그 의미도, 심리적 강도도 다르다. 노고지리의 시간은 '세월은 유수 같다'는 전통적 표현처럼 물처럼 흐르는 자연시(自然時)다. 확실한 경계선을 표시할 수 없는 '무수치(無數値)'로 표현되는 시간이다. 소 치는 아이는 조금 늦장을 부려도 별 지장이 없다. 혼자 하는 밭갈이는 얼마든지 시간을 자신에게 맞춰서 일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 종은 사정이 다르다. 이미 '땡땡땡'이란 말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그것은 이산적(離散的)인 단위의 수치로 표현되는 기계시(機械時)다. 급행열차의 시간표처럼 분초 단위로 금을 긋기 때문에 잘못하면 일 초 차이로 교문이 닫히고 지각생이 될 수도 있다. '어서 모이자'라는 말 역시 시간은 한날, 한시, 한곳에 모이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야 공부도 하고 일도 한다.

무엇을 배우느냐보다도 어떻게 모이는가를 가르쳐 주는 곳이 학교다. 한번 외우면 그만인 구구단과 달라서 학교를 모두 마친 뒤에도 '학교 종'은 '회사 종'이 되고, '회사 종'은 '사회 종'이 된다.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그 선생님은 새벽 교회당에도 있고, 공장 문에도 있고, 모든 역 모든 거리의 문 앞에도 있다. "얘야, 학교 늦을라"의 어머니 소리는 어렸을 때 듣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밤 12시, 자정에서 일 초만 넘겨도 마법의 마차는 호박이 되고 백마는 쥐가 되고 신데렐라의 옷은 누더기로 변할 것이다. 요술쟁이 노파가 힘을 쓰는 그 옛날에 대체 무슨 놈의 시계가 그것도 분초를 따지는 정확한 시계가 있었다고 신데렐라는 허둥지둥 나오다가 유리구두까지 벗겨져야 했는가. 모든 것을 양자화(量子化)하는 디지털 시계처럼 유리구두 역시 한 치의 에누리도 없이 투명하다. 그러고 보면 신데렐라의 판타지는 컨베이어 벨트의 작업라인에서 시간에 쫓기며 일하는 여성 근로자의 예고편이었던 것이다.

아날로그의 시간이 디지털 시간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은 개인 노동에서 집단 노동으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시간에 먹고 기도하고 잠자야 하는 수도원의 생활에서 기계 시계가 처음 발명됐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도시 전체가 듣는 교회당 시계탑이 괘종시계가 되어 가정 안으로 들어오고 그것이 탁상시계가 되어 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회중시계로 작아지면서 개인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온다. 이윽고 오늘날 같은 팔목시계가 되면 사회의 노동과 생활양식도 집단에서 개인으로 옮겨진다.

컴퓨터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집단이 함께 모여 작업하는 대형 메인프레임은 회사의 워크스테이션으로 변하고 그것이 데스크톱 PC가 되면서 집으로 들어온다. 다시 노트북 컴퓨터가 작아지면서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모바일, PDA로 줄어든다. 거기에서 다시 휴대전화 세상이 되면 아예 내 손목시계는 사라지고 만다. 사회도 함께 변해서 출근시간도 개인에 따라서 제가끔 달라지는 플렉스 타임이 적용되고 시차근무제가 실시된다. 그리고 주5일제가 되어 아침에는 때때로 노고지리 우짖는 시간이 온다.

정말 그렇다. 노고지리도 학교 종도 아니다. 디지로그의 시간은 백마를 탄 왕자의 말발굽 소리처럼 온다. '빨리빨리'의 디지털사회는 업그레이드돼 오직 한 사람의 발에만 맞는 외짝 유리구두가 주인을 찾아오는 '온리 원'의 시대가 온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 바로잡습니다

2월 1일자 3면 '내 손목시계 어디로 갔나 디지털 사회 업그레이드'제하의 기사 중 빠진 글자가 있었습니다. 본문 "확실한 경계선을 표시할 수 없는'무수(無數値)'로 표현되는 시간이다"중 '무수'는 '무수치'가 맞습니다.


2006.01.31 19:3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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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3. 젓가락 기술의 바탕은 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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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읽으면 정(情)을 알리는 것이 정보(情報)다. 하지만 영어의 인포메이션이나 중국어의 신식(信息)에는 정이라는 뜻이 없다. 정보기술(IT) 역시 정과는 먼 전쟁의 산물이었다. 최초의 컴퓨터 애니악은 탄도(彈道) 계산을 하려고 미군 발주로 만든 것이고, 초기의 인터넷 아파넷(Arpanet)은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컴퓨터 시스템을 분산 보호하기 위해 구축한 미국의 군사용 네트워크였다.

'정보'란 말도 실은 적정보고(敵情報告)를 줄인 말이다. 개화기의 일본인들이 프랑스의 보병훈련교본을 번역할 때 만든 말로 젓가락 기술의 정과는 그 뜻이 다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소댕 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또 그 젓가락 기술이냐고 진저리칠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은 젓가락 기술을 콩을 집어 먹는 손재주로 안 것부터가 잘못된 생각이다. 젓가락이 IT.BT(생명공학)시대에서 평가될 수 있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손재주가 아니라 머리와 마음속에서 생긴 정(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백 가지 천 가지 이유에 앞서 젓가락은 모든 음식을 한입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요리를 만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약 비프스테이크처럼 덩어리째 음식을 놓았다면 우린들 별수 있었겠는가. 양식의 경우처럼 부엌에 있는 도마와 식칼이 각자의 테이블 위로 나앉아야 할 것이다. 한입에 들어가도록 음식물을 잘게 저며 주는 마음 그것이 바로 정이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정은 기계나 물질을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느끼고 헤아리는 '관계기술'(Relation Technology)을 낳는다.

"한국인은 한 손으로 먹고 양인(洋人)은 양손으로 먹는다"는 농담이 있듯이 서양 사람들은 포크.나이프로 식사를 한다. 음식을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의 관계는 단절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창이요, 칼이다. 실제로 9.11테러 사건 이후 포크.나이프는 항공여객의 휴대품 금지목록에 올랐다. 하지만 술좌석의 젓가락 장단에서 보듯이 젓가락은 신나는 악기가 된다.

활에서 하프가 생겨난 것처럼 나폴레옹이 현상금까지 내걸고 개발한 통조림은 오늘날 수퍼마켓의 일상 식품이 되었고, 군사용으로 닦은 길은 자동차 경주용 트랙으로 변했다.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사람을 즐겁게 하는 악기로 반전시키는 것. 그것이 기술문명의 방향이요, 희망이다. 빌 게이츠가 나폴레옹과 닮은꼴이라는 BBC방송의 분석처럼 전쟁기술이 낳은 IT는 아직도 비정하고 공격적인 피비린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정(無情)을 유정(有情)으로, IT(정보기술)를 RT(관계기술)로, 디지털을 디지로그로 문명의 그 큰 흐름을 바꿔놓는 새 물결이 지금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이어령 중앙일보사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02 19:4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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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8. 소 잃은 외양간 SHELL로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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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인간 사회와 문명은 거의 모두가 소 잃고 난 뒤에 고친 외양간들이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같은 뜻의 속담을 두고 생각해보면 금세 납득이 갈 것이다. 페니실린은 플레밍 박사가 군의관으로 있을 때 수많은 병사가 총상의 염증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연구해 낸 대표적인 사후약방문이었다. 지금도 항생제란 날로 내성이 강해지는 균으로 계속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중이다.

수백, 수천 번 전복하고 충돌하여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다음에 만들어진 것이 자동차의 안전띠이고 에어백이다. 볼보는 아예 사고현장에 달려가 원인과 결함을 캐내어 외양간 고치는 일을 제도화한 회사로 유명해진 자동차 회사다.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란 것도 사기꾼이나 도둑에게 소 잃고, 강도에게 목숨을 잃고 난 뒤에 고친 외양간이며 처방한 약방문이다. 정보시대를 만든 IT 혁명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 이 칼럼을 통해 지적한 '시루떡 나누기'(2회), 정보 미디어 '젓가락질의 RT 문화'(3회), '좌우지간'의 자전거 타기(6회) 같은 문화들이야말로 정보시대에 잃은 우리의 힘센 황소 뿔이 아니겠는가. 새 외양간을 만들어 다시 황소의 생명력을 들이지 않으면 희망의 디지털은 조류 인플루엔자(AI)와 같은 변종 바이러스가 되고 행복의 인터넷은 암세포로 돌변할 수도 있다. IT의 고황(膏)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있으니 그런 걱정은 기우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꼭 나침반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 폭풍까지도 막아주는 줄로 과신하고 항해하다가 목숨을 잃은 수부들 생각과 같은 소리다. 시뮬레이션 기술이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어떤 상황이나 시스템 동작을 그와 비슷한 모델로 대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의학용어로는 꾀병, 물건의 경우에는 모조품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안전제일과 초 단위의 정확한 운행으로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JR이 어떻게 해서 지난해 4월 25일 5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아마가사키(尼崎) 열차 탈선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를 일으켰는가. 가장 큰 사고원인으로 운전미숙을 든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나 자동 열차정지 장치(ATS) 같은 기술에 의존한 현장 감각, 체감 제로의 피부 감각 없는 기관사 양성이 그러한 참사를 불렀다는 것이다. 운전대를 꽉 잡고 죽은 나이 23세의 다카미(高見) 기관사는 쇠망치로 열차바퀴를 두드리고 다니던 옛날 노 철도원이 아니라 정보시대의 쌩쌩한 첨단을 달리는 노매딕 키드였던 것이다.

남의 나라의 열차사고 이야기가 아니다. 정보시대의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상징적 사고다. 혹시 지금 우리는 컴퓨터의 가상현실 속에서 운전을 배운 젊은이들이 모는 열차에 타고 있는 승객이 아닐까. 뒤창에 병아리 그림을 붙이고 운전하는 초보운전자들은 신중성도 있고 애교도 있다. 그러나 현장감각 체감 제로의 기관사가 가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한 채 과신 속에서 천방지축 달리다가는 궤도를 잃은 청룡열차(5회)처럼 추락할지도 모른다. 키를 잃은 배, 지팡이를 잃은 양치기처럼 좌우 균형을 잃고 표류할 때(6회) 우리는 다행히도 "SHELL"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JR 서일본의 아마가사키 열차탈선 때도 그랬다. 대형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외양간을 고치기 위해, 그 약방문을 쓰기 위해 "SHELL"이라고 외친다. 우는 애를 멈추게 하는 호랑이보다도 무서운 곶감처럼 컴퓨터도 도망가는 '조개'가 존재한다는 말인가.


이어령 중앙일보사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 바로잡습니다

1월 9일자 3면 '디지로그 시대가 온다⑧' 칼럼 가운데 'JR'을 'JR 서일본'으로 바로잡습니다. JR은 Japan Railway의 약자입니다. JR은 당초 하나의 국영 철도회사였지만 일본 정부가 1987년 JR을 지역에 따라 분할해 민영화하면서 JR 동일본, JR 서일본, JR 규슈 등 7개로 쪼갰습니다. 따라서 JR이라고 하면 7개 철도회사를 통칭하는 표현이 됩니다.

2006.01.08 19:3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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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16. 무한 진화 인터넷의 새 버전 '웹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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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그렇게 박식하고 상상력이 풍부했던 H G 웰스가 1901년에 출판한 '예상집'을 지금 읽어보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비행기'는 수송 교통수단이 될 수 없고, '잠수함'은 함장이 바다 밑에서 질식해 죽는 광경만 보일 뿐 신무기로는 쓸모가 없다고 단언한다. 물론 32년에 50년 뒤의 신문을 예상하고 쓴 기사에는 컬러 인쇄, 캐주얼한 옷의 유행, 그리고 공산주의의 몰락 등 좀 성급한 것도 있지만 그런대로 정곡을 맞힌 것도 있다. 하지만 화석 연료 대신 지열(地熱)을 쓰게 될 것이라는 예언처럼 빗나간 실패작이 많다.

그러나 '세계의 뇌(world brain)'라고 명명한 그의 '인터넷'에 대한 예언만은 아주 정확했으며, 지금 보아도 신선한 충격을 준다.

'세계의 뇌'는 제2차 세계대전의 먹구름이 일기 시작하던 때의 것으로, 예언이라고 하기보다 그의 절실한 희원이 담긴 아이디어였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지식 정보는 가속도로 늘어가고 있는데도 인류는 여전히 무지 속에 살고 있다. 그것에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이나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이 자동차와 비행기로 바뀌어도 인간의 두뇌는 마차시대에 멈춰 있다. 그래서 방대한 '정보 집배센터'를 구축해 '영구 세계 백과사전'을 만들어 잠시도 쉬지 않고 최신 정보를 기록해 세계 곳곳에 분배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동수단과 통신의 급속한 발전으로 '거리(距離)의 철폐'시대를 살면서도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해야 할 세계는 해도 (海圖) 없이 항해하는 느린 배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세계의 뇌'는 국제사회를 통합시키고 전쟁 없는 지구를 실현하게 될 것이다. '세계의 뇌' '영구 세계 백과사전'은 지구에서 가장 널리 사용하고 있는 영어로 기록될 것이며, 시시각각 수정.보충되는 정보들은 마이크로 필름에 담긴다. 그것은 세계 어느 도서관에서나 프로젝트를 통해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된다.

마이크로 필름을 디지털로, 도서관의 프로젝트를 PC의 모니터로 바꾸기만 하면 오늘의 인터넷이 된다. '세계의 뇌'에 대한 예언을 보면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평범한 말과 "미래의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묻지 말고, 미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게 된다.

이뿐 아니라 바로 지난해 5월 '팀 오레일리(Tim O'Reilly)'에 의해 태어난 web 2.0이란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2.0이라는 숫자가 암시하고 있듯이 인터넷 역시 지금까지 사용해 온 1.0과 1.5의 구 버전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하지 않고는 생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2001년 닷컴(dot com) 기업들이 버블로 붕괴해 닷컨(dot con- '사기'라는 뜻)으로 전락했을 때 모두 그런 운명을 실감했다.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세계의 뇌, 인터넷 역시 시대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끝없이 진화한다. 젊은 대학 연구원들이 신개념으로 만든 검색 사이트 구글은 오히려 그 붕괴 속에서 웹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MS.야후 등 공룡 기업을 위협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만나게 될 web 2.0은 또 다른 IT 혁명을 위한 미래 전략은 예언이 아니라 그 창조의 의지를 보여주는 신기술.신개념의 발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옆에서는 아직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것이라 하여 기피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이름이야 어떻게 붙였든 인터넷 안에선 차세대의 신생아들이 무서운 거인으로 자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당장 구글로 web 2.0을 검색해 보면 950만 건이나 나타난다. 동시에 인터넷의 대륙과 해양을 지배해 오던 제국들이 황혼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쓸쓸한 뒷모습이 보인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살펴보면 디지로그 시대의 얼굴도 보일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17 20:0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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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24. '아노토 펜' 이 붓 문화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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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전기 모터와 가솔린 엔진을 합쳐 하이브리드 카를 만들어 낸 것처럼 스웨덴에서는 펜으로 쓴 메모장의 내용이 그대로 PC나 휴대전화로 전송되는 아노토(anoto)의 펜이 개발됐다. 물론 종이 위에 잉크로 쓴 아날로그 정보도 펜대에 내장된 A4용지 40장 분량의 메모리에 디지털로 기록 보존된다. 펜촉에 달린 카메라가 사람 눈에 띄지 않는 무수한 점을 인식한다. 그 특수지의 패턴을 모두 합치면 유라시아 대륙만한 스케치 북이 된다고 하니 SF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현재 노키아 6630/보더폰 702NK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현실 속의 이야기이다.

이 펜의 개발자인 파헤우스 박사는 수학자.물리학자만이 아니라 신경생리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컴퓨터 연구가들이 생물학자들처럼 개구리를 잡으러 다니고 낙지를 기르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디지털 회로와 신경 회로가 합쳐지는 디지로그 기술이 늘어갈 것이라는 건 이제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아노토 펜의 충격은 엄지족이 아니라도 디지털 환경과 접속할 수 있다는 편의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두 문화 환경에서 가장 심한 단절을 이루어 온 것이 바로 글씨 쓰기일 것이다. 컴퓨터의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어떤 필기도구를 사용했든 인체와 손으로 쓴 글씨 사이에는 분리할 수 없는 깊은 연관성이 있었다. 소위 사람마다 다른 필적(筆跡)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걸어다니면 땅위에 발자국이 생기듯이 종이 위에 글씨를 쓰면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의 흔적이 찍힌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옛날부터 지문처럼 필적 감정을 통해 범인을 잡는 일이 많았다. 미술사가 르네 위그의 말마따나 용접공이 철판을 절단한 그 선에서도 그 사람 고유의 흔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은행 금고를 턴 파리의 대도를 추적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타자기라 해도 사람의 습관에 따라 카본 테이프를 통해 찍혀 나오는 문자에 강약의 터치가 생겨나지만 발자국 없이 다니는 유령처럼 아무 발자국도 남기지 않은 것이 유일하게도 컴퓨터 액정판 위에 비치는 디지털 문자다. 컴퓨터에서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우리는 개성과 신체성을 상실한 귀신이 되는 셈이다.

이뿐 아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두 문화적 특성은 분절된 것과 연속체로 붙어 있는 것의 차이에 있다. 서양 문화가 들어오기 전에는 그것이 한자든 한글이든, 그리고 가나문자든 모두 띄어쓰기를 하는 법이 없었다. 삼국 모두 초서처럼 물이 흐르듯 글씨를 붙여서 써내려갔다. 사실은 서양도 처음에는 우리처럼 단어를 붙여 썼던 것을 후에 와서 띄어 쓰는 필기법이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좁은 지면에 자세히 논할 수는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서양의 근대문화가 디지털적이고 동양문화가 아날로그적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예가 붙여 쓰기와 띄어쓰기, 그리고 서양의 펜과 동양의 붓이다.

보통 펜글씨로도 쓸 수 있고 그것이 자동으로 디지털의 문자로 바뀌기도 하는 양서류 같은 아노토 펜 속에서 죽어가던 붓글씨의 재생을 보게 된다.

그리고 붓의 발명자로 전해지는 '사기(史記) 열전'의 몽염(蒙恬) 장군이 떠오른다. 융적(戎狄)을 쳐 공을 세우고 만리장성을 쌓은 몽염 장군이지만 마지막에는 정적에게 밀려 사약을 받고 죽는다. 처음에는 억울하다고 항변했지만 자신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무수히 지맥(地脈)을 끊었던 사실을 깨닫고 그 때문에 하늘의 벌을 받는 것이라고 깨닫게 된다. 아노토 펜이 암시하는 미래의 문명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몽염이 말한 땅의 지맥이 자연의 연속체를 의미하는 아날로그 문화이고 그것을 끊은 만리장성이 디지털의 불절 문화라는 사실에 대해서만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26 20:1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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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5. 청룡열차를 탄 한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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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외국의 어느 비평가는 한국의 정치를 롤러코스터에 비유했다. 우리가 청룡열차라고 부르는 유원지의 그 오락용 활주차와 같다는 것이다. 맹렬한 스피드로 곡예를 하듯이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가다가 정상에 이르면 급전직하로 떨어지는 것이 청룡열차의 원리다. 그 비평가는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 하나하나의 예를 들어가면서 그들 모두가 청룡열차와 같은 이미지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올라갈 때의 위풍당당한 모습과 내려올 때의 초라한 모습이 너무나도 대조적이라고 놀라워하기도 한다. 청룡열차의 정치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어서 90% 가까운 지지율의 정상으로부터 20%대로 급락한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거론하고 있다.

기분 나쁜 비평이지만 할 말이 없다. 정치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경제.사회, 그리고 문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분명 청룡열차와 다름이 없다. 벤처기업도 아닌 글로벌 대기업의 총수가 박수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죄인의 얼굴로 돌변하는 것은 다반사이다. 난치병 환자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던 줄기세포의 영웅도 순식간에 정상에서 나락으로 추락하는 세상이 아닌가.

아시아의 용이라고 칭찬받던 한국의 나라 전체가 금융 환란으로 청룡열차처럼 급하강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죽했으면 한국인들은 IMF를 "아이고, 미치고 환장하겠다"고 불렀겠는가.

그러나 그 비평가에게 우리는 물어봐야 할 말이 있다. "그래 당신의 말이 맞는다고 하자. 하지만 당신 말대로 최고 권력자들이 한 번도 아니고 다섯 번, 여섯 번씩이나 추락했는데도 아직도 한국이 멀쩡하게 살고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가. 어째서 당신네보다도 청룡열차를 타고 지내는 한국인이 더 낫게 살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가. 그래도 모르겠으면 권력의 정상에서 반세기 넘게 내려앉은 적이 없는 김 부자의 세습 정권밑에서 살고 있는 북한보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이 더 기 펴고 편안하게 잘 살고 있는지 그 이유를 따져본 적이 있는가.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남들 같으면 한 번의 추락으로도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갔을 터인데 청룡열차를 타고 있던 사람들이나 밖에서 올려다보고 있던 사람들이나 그 얼굴에 아직 절망의 빛이 없으니 이게 웬 까닭인가.

그래 정말 좋은 비유다. 청룡열차의 구조를 모르면 한국인도 모른다. 인간이 타는 승용물 가운데 롤러코스터만큼 불가사의한 것도 없다. 일본에서는 그것을 제트 코스타라고 부르지만 그 차체 안에는 제트는 물론 어떤 동력장치도 달려있지 않다. 핸들도 없고 엄격하게 말해 브레이크 장치도 없다. 순전히 위치 에너지를 동력 에너지로 바꾸어 원심력과 구심력의 밸런스를 통해 애크로배틱하게 움직이고 스피드를 낸다.

그렇다. 한국 정치가 그냥 직선 궤도를 달리는 보통 열차였다면 단 한 번의 충돌과 추락으로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정말 기적 같은 균형감각과 활강의 순발력으로 천 번 만 번 추락해도 새로운 청룡 하나가 내일 다시 그 떨어진 바닥으로부터 다시 솟아오를 것이다. 좌로 쏠리고 우로 부딪쳐도 불안과 공포의 절규는 들려와도 당신네 마음같이 한쪽으로 쏠려 풍비박산하는 법은 결코 없을 것이다.

보수 청룡이라고 부르든 386 청룡이라고 하든 우리가 그 위기와 추락의 격변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훌륭한 정치가나 영민한 경제학자와 과학자가 있어서가 아니다. 한 번도 정상에 올라 본 적 없는 평범한 한국인의 피 속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놀라운 균형감각과 그 순환 의식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롤러코스터의 균형 인자! 두고 보라, 그것이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두 세계를 극적으로 통합해 이끌어가게 될 한국인의 디지로그 파워다.

이어령 중앙일보사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04 19:5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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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13. 배달부의 초인종은 클릭 소리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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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배달부의 초인종은 클릭 소리보다 크다.

집 안에 틀어박혀 인터넷만 하던 청년이 채팅으로 사랑하게 된 여성에게 꽃다발을 보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장미를 보낸 지 100일째 되던 날 그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녀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게 된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것은 그녀의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이었다. 거기에는 이런 사연이 적혀 있었다. "꽃을 보내주신 은혜 평생 잊지 않을 거예요. 매일 장미를 배달해준 꽃집 청년과 결혼하게 되었답니다."

그냥 웃고 말 유머가 아니다. 그 인터넷 청년의 충격은 네그로폰테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단순한 비트와 아톰의 차이에서 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뜻밖의 청첩장을 받기 전까지 그는 배달부의 초인종 소리가 컴퓨터의 클릭 소리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초인종이라는 말, 배달부라는 촌스러운 구식 말에 대해 아무것도 느끼는 바가 없었을 것이다.

초인종(招人鐘)이라는 말이 벨이니 클릭이니 하는 낯선 외래어보다 정감 있게 들리는 것은 옛날에 대한 향수 때문만은 아니다. 초인종은 한자 뜻대로 읽으면 사람(人)을 부르는(招) 종(鐘)이라는 뜻이다. 방 속에 틀어박혀 인터넷만 하던 그 젊은이는 모든 정보통신의 미디어가 본질적으로 초-인-종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젊은이들을 우리는 인터넷 중독자, 일본 사람들은 '오타쿠', 중국인이라면 '인특망광(因特網狂)', 그리고 영어권 사용자들이라면 워크홀릭을 본떠 '웹홀릭(webholic)'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그레이엄 벨이 통신 사상 처음으로 조수와 전화 시험통화를 했을 때 그 첫마디 소리는 "웟슨군. 이리 오게(Mr. Watson, come here, I want you)"라는 부름의 메시지였다. 그렇다. 분명 사람을 부르는 욕망의 일성(一聲)에서 전화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대부분의 전화 용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만남의 약속이다. 그 욕망의 거미줄이 컴퓨터와 연결되고, 그 줄이 동(銅)에서 광섬유로, 통신위성의 보이지 않는 공기의 전파로 진화해 간 것-그것이 바로 오늘의 인터넷이며, 월드 와이드 웹(www-세계에 널리 쳐진 거미줄)이다. 중국식 표현으로 하자면 계산기가 전뇌(電腦)로 돌연변이를 일으킨 셈이다.

그러한 인터넷 공간의 기계적 진화권(進化圈)에 비해 오프라인의 생물적 진화권에서는 여전히 빨간 자전거를 탄 우체부 아저씨의 환상이 남아 있다. 한 손에 장대처럼 높이 우동 그릇을 쌓아 올린 중국집 배달부의 모습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옆에서 아이들이 전화를 거는 것을 지켜보라. 아이들은 한참 수다를 떨고 난 다음 전화를 끊으면서 하는 말이 있다. "자세한 건 거기에서 만나 이야기하자!"라고. 대체 전화로 실컷 말하고 만나서 다시 자세히 말하자는 것은 무엇인가. 자그마치 120년 전 전화가 발명됐을 때 벨이 "웟슨군, 이리로 오게"라고 했던 것과 조금도 변한 것이 없는 정보 감각이다. 현실 공간이 아니면 도저히 소통될 수 없는 생물적인 정보 욕망이 세대를 건너뛰어 지속된다.

처음 전화가 가설됐을 때 서울에 유학 간 아들에게 보내려고 전화줄에 시루떡 봇짐을 달아맸다는 우리 할머니들을 무식하다거나 망령이 났다고 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을 하고 있는 당신네의 손자들도 다만 의식하지 않을 뿐 생물적인 원초적 정보 욕망을 지니고 있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터넷 거미줄의 허공에 걸려 있는 당신의 손자들이 아무 때고 자유로이 땅바닥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디지로그 장대나 사다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13 18:5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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