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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21 이어령 교수님 특강과 디지로그 책을 읽고..
  2.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6. 쥐를 이기는 방법, 바이오닉스
  3.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 시루떡 돌리기 정 담은 정보 원리
  4.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10. 컴퓨터는 셈틀이 아니다
  5.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18. 사이(間) 문화가 낳은 싸이 문화
  6.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3. 하이브리드 카 - 새 문명을 싣고 오는 바퀴
  7.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30회 시리즈를 마치며 "디지로그 시대가 온다. 디지털 강국서 한 발짝 더…한국문화와 융합하라"
  8.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7. 사이버 항해의 키워드 '좌우지간'
  9.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15. 한국의 인터넷 문화 '@골뱅이와 번개'
  10.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0. 공명실 속의 인터넷 헐크

이어령 교수님 특강과 디지로그 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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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님 특강에서 느꼈던 가장 큰 감동은 이어령 교수님의 애국심입니다.

조목 조목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 한말씀 한말씀 속에는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한국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위한 애닮은 걱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 나라가 지금 이렇게 일어섰지만, 곧 필리핀과 같이 무너질 수 있겠다는 걱정.. 이 나라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 우리가 찾아봐야할 것들이 무었인지 알려야겠다는 열정.. 디지로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잊고있었던 한국적인 정서와 디지털 세계에 앞장설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워 주시는 애정..

저는 이어령 교수님의 특강을 들으면서 그분의 정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를 바라보는 듯한 정을..

그 정을 이어령 교수님의 디지로그 책에서도 느꼈습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약간의 논리적인 비약도 있었습니다. 청룡열차같은 정치를 이야기할때는 우리나라에 대한 참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떡 문화에 대하여 이야기하실때는 우리나라의 참된 정이 무었인지 느끼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령 교수님께서 특강을 통하여 우리에게 시루떡을 돌리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떡을 받아봄으로써 떡을 돌리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그 집안에 어떤 일이 있는지 알 수 있게되는 우리의 떡문화!

이어령 교수님은 우리에게 디지털 떡에 한국적인 아날로그라는 콩고물을 가득올려서 저희에게 아주 맛난 떡을 돌리신 것입니다.

우리의 떡 문화는 돌리고 돌리게 되어있습니다. 나도 떡을 받으면 언젠가는 남에게 떡을 돌리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정보는 돌아다닙니다.

디지털도 마찬가지 입니다. 디지털 정보도 우리가 돌리고 돌리면서 정보가 돌아다닙니다.이어령 교수님은 우리가 이렇게 디지로그를 서로에게 돌리고 돌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단지 디지털이 아닌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골고루 묻힌 디지로그를 돌리기를 원하신는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디지털에 어떤 아날로그를 올릴지는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이 떡을 받을 사람을 생각하는 미덕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떡 문화처럼, 저역시 제가 만드는 디지로그를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맛도 좋고, 빛갈도 좋고, 냄새 또한 죽이는 디지로그를 만들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새로운 디지털 문화에 대하여 생각해왔는데 이번 특강을 통하여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어령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 정 같이 나누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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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30회 시리즈를 마치며 "디지로그 시대가 온다. 디지털 강국서 한 발짝 더…한국문화와 융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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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
30회 시리즈를 마치며> 이어령 본사 고문의 `키워드 풀이`

'디지로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친 말이다. '디지로그'는 단편적인 기술용어가 아닌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다.

신년 시리즈 '디지로그 시대가 온다' 30회를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끝낸 본사 이어령 고문을 만났다. 독자에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던 미진한 부분들을 알아보는 자리였다. 연재된 글에는 아직 낯선 개념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고문은 "신년 덕담을 글로 풀어 쓴 것일 뿐"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새로운 개념과 지식을 추가했다. 그것은 앞으로 책을 통해 정리될 수밖에 없으리라.

 
 중앙일보 이어령 고문
[사진=최정동 기자]
-우선, 연재를 끝내신 소감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신년 덕담을 글로 쓴 것뿐인데요. 덕담이란 원래 나이 든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까. 자연히 비판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풀어야 할 과제를, 그리고 과거사가 아니라 앞날의 성취를 이룰 수 있는 희망의 화두를 내놔야겠지요. 이런 성격에 맞춰 덕담을 하다 보니 복(福)이란 말이 '디지로그'란 용어로 요약된 것이지요."

-디지털이니 아날로그니 하는 말도 쉽지 않은데 그것을 한데 합친 '디지로그'는 더욱 어렵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럴 겁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되풀이하면서도 막상 덕(德)이란 말이 무엇인지 복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쓰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디지로그란 말도 복이니 덕이니 하는 말처럼 자꾸 쓰다 보면 장독의 묵은 장맛처럼 몸에 배게 되겠지요."

-벌써 디지로그란 말이 시중에서 많이 퍼져 있는데요. 아직은 첨단기술 제품에 옛날 감성을 담은 상품이라는 마케팅 용어로 주로 쓰이는 듯합니다. 기업체의 큰 연구소나 성인교육기관 같은 데서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요.

"모든 용어는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 낮은 의미와 높은 의미를 지니기 마련입니다. 특히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전자공학의 기술용어에서 시작해 일상적인 비유적 표현, 그리고 문학이나 철학적 개념어로 조금씩 다른 의미로 쓰입니다. 그것을 모두 아우른 포괄적 개념이니 마케팅 용어로 사용해도 나쁠 것 없습니다."

-디지로그처럼 개념이 다르거나 대립된 뜻을 한데 합쳐 쓰는 혼성어들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공부와 놀이는 정반대 현상인데 요즘에는 둘을 합쳐 에듀테인먼트라고 하지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최근 작고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이 1968년 미국 뉴욕에서 발표한 설치작품 'TV 부처'. 동양과 서양, 과학기술과 명상의 세계, 인간화된 예술 등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담고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아우르는 디지로그의 이념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그런 혼성어를 외국에서는 포트만토 (portmanteau)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연기와 안개는 독립된 말이었지만 공해로 이 두 개가 합쳐지는 현상이 일자 스모그(smoke+fog)란 혼성어가 생겨났어요. 디지털 기술이 처음 나오자 디지털 혁명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고 그것만 있으면 아날로그의 기술이나 물질로 못하던 일을 다 할 수 있다고 믿었지요. 하지만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말처럼 디지털만으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디지털 기술이 성숙해질수록 아날로그의 기술과 감성이 있어야 된다는 의식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래서 '후기 정보사회를 향하여'라는 부제를 붙이신 거군요.

"그렇지요. 컴퓨터 인터넷이 생기던 초기 정보화 사회와는 그 환경이 몰라볼 정도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우선 인터넷의 역기능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각종 전자제품을 비롯해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학.사회.문화 전반에, 심지어 정치 분야에서도 디지털적인 1과 0의 이항대립적 사고의 틀이 깨지기 시작합니다. '좌파도 우파도 없는 새 정치세계'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마는 시카고대 테니 클라크 교수는 20년 동안 20여 개국에서 얻은 구체적인 데이터들을 조사분석한 결과 기존 정치풍토와는 달리 좌파.우파로 가를 수 없는 새 정치의 징후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지요."

 
 ◆디지로그 문화의 상징 '아노토펜'=스웨덴의 아노토사가 개발한 특수펜. 펜촉 옆에 달린 카메라 센서가 종이위의 아날로그 글씨를 인식해 컴퓨터로 전송한다. 24회 '아노토 펜이 붓 문화 살린다' <본지 1월 27일자 3면> .
 
-정치 말고 우리의 피부감각에 직접 와닿는 디지로그 현상으로 전자제품이나 기업 모델을 든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소니가 신개념 컴퓨터로 판매한 바이오(vaio)시리즈입니다. 비주얼과 오디오를 나타내는 앞의 VA자는 아날로그의 파상곡선으로 그려져 있고 끝의 아이오(IO)는 디지털의 1과 0으로 디자인돼 있는 그 로고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융합된 세계를 지향하는 소니의 정신을 나타낸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 '아이 제너레이션'이란 말에 불을 붙인 애플사의 '아이팟'(iPOD) 휴대 음악 플레이어도 넓은 개념으로 보면 디지로그 증후군의 하나라고 할 수 있어요. 종래의 워크맨 같은 아날로그적 환경과 인터넷상의 냅스터나 소리바다와 같은 음악 공유 사이트의 디지털 환경을 뛰어넘어 저작권 문제까지도 일거에 해소했으니까요."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같은 거대기업이 애플의 디지로그적 발상에 일격을 당한 거군요. 그런데 방금 디자인이라고 하셨는데 그것도 디지로그와 관련이 있나요.

"디자인은 디지로그 파워의 핵심이지요. 디지로그 마케팅은 모두 디자인의 의식과 감각에서 나옵니다. 서양의 종은 안에서 쳐서 밖으로 울리도록 되어 있고, 한국(동양)의 범종은 밖에서 쳐서 안에서 울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장식적 차이가 아니라 문화와 종교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인간(아날로그)과 컴퓨터(디지털)의 접촉면을 인터페이스라고 하는데 디자인은 바로 인간과 물건 사이를 연결해 주는 인터페이스를 만들어주는 파워입니다. 길이 나쁘면 왕래가 어려워지듯이 쓰기 힘들고 정이 안 붙는 디자인은 사람의 마음을 끌지 못합니다. 그래서 산업시대의 3D는 모두들 피했지만 오늘의 Digital.DNA.Design의 3D에는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디지털은 숫자의 세계이고, 아날로그는 말의 세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융합하는 사고를 하신 거군요.

"사실은 언어도 좌뇌 기능에 속하는 것으로 선과 악, 생과 사 등 디지털적인 대립항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숫자와 비교할 때에는 아날로그를 대표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에서 언어는 문화, 숫자는 문명을 만드는 것으로 보았으며 '1984년'의 미래소설을 쓴 조지 오웰은 문명의 종말과 인간의 위기를 언어가 숫자로 바뀌는 그 파괴 과정을 통해서 보여주었지요. 나를 대신하는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각종 자격증과 카드 번호는 모두가 디지털적 세계의 숫자로 돼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죄수처럼 숫자로 호명되는 감옥 속에서 살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하의 감옥에서 한 시인이 자신의 죄수번호 264번을 언어로 컨버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광야'의 시인 이육사(李陸史)의 필명입니다. 386세대를 원래의 숫자적 의미와는 달리 3.1절과 8.15와 6.25를 모르는 세대라고 한다든지, 펜티엄 시대의 386 컴퓨터라고 패러디화하는 것도 일종의 숫자의 언어화입니다. 그리고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9.11 역시 점을 빼면 911로 미국의 구급 비상전화 번호가 됩니다. 이를 뒤집으면 11.9가 되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이 되지요. 언어를 숫자화하는 것이 디지털 문화라면 이육사의 경우처럼 숫자를 언어로 컨버전하는 것이 디지로그 문화의 징후군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노토 펜(그림 참조)이 보급되면 그것으로 직접 원고를 쓰시겠습니까.

"내 생전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이브리드 카도, 아노토 펜도 아직은 일찍 찾아온 한 마리 제비일 뿐입니다. 아무리 속도가 빠른 세상이라고 해도 컴퓨터가 광대역 고속통신망과 연결되는 데는 반세기 이상 걸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연잎 현상'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연못을 반쯤 덮었던 연잎이 그 연못 전체를 다 덮는 날은 바로 그 다음날이라는 비유이지요. 주전자의 물이 99도가 되어도 끓지 않다가 마지막 1도에서 갑자기 끓는 것과 같아요. 상품도, 비즈니스 모델도, 사회현상도, 정치나 이념도 어떤 임계점에 달하면 눈 깜작할 사이에 연잎현상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지금은 작은 징후이지만 디지로그 현상도 어느 땐가는 폭발적으로 퍼질 때가 올 것입니다."

-끝으로 한 말씀 더 듣고 싶습니다. 뗏목을 버리라는 말로 시리즈 끝맺음을 하셨는데요.

"한국 사람들은 꼭 뒤풀이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기지요. 이차.삼차까지는 가야(웃음). 종소리도 그냥 울리는 것이 아니라 나부끼는 옷고름 자락처럼 여운이 깁니다. 뒤풀이 문화의 아날로그 심성이야말로 빡빡한 디지털 문화를 푸는 치료제지요. 그러나 자전거 기술로 비행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6회 참조) 라이트 형제는 그 기술을 버리지 못해 결국은 비행기를 새로 개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버릴 때가 되면 버려야 하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문에 하루하루 바삐 쓰다 보니 출전을 일일이 밝히지 못했고 미처 고치지 못한 오류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다듬고 보충해 한 권의 책으로 묶는 것이 제가 뗏목을 버리는 날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미운 사람도 뒷모습을 보면 용서할 수 있지요.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들을 죄악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 지상에는 우리보다 잘 사는 사람이 많지만 남의 가슴에 못질하지 않고, 피눈물 흘리지 않게 하고 이만큼 사는 대한민국 같은 나라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세요. 우리가 남겨두고 가는 뗏목이 삐걱거린다고 탓하지 말고 두 손으로 불끈 그 키를 잡으세요. 물에 떠내려가지 않으면 분명 한국인은 디지로그 시대를 앞장서 갈 것입니다."

대담 글=조현욱 문화·스포츠 부문 부에디터 <poemlove@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2.05 19:51 입력 / 2006.04.08 00: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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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7. 사이버 항해의 키워드 '좌우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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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육신을 지니고 있는 인간들은 아무래도 감성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가 보다. 사이버의 비물질 공간을 두고도 사람들은 그것을 바다나 푸른 초원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정보 검색을 하는 것을 서핑(파도타기)한다고 하고 원하는 웹페이지를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을 내비게이션(항해)이라고 한다. 이미 말한 대로 사이버(cyber)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어의 키잡이(keybernetes.操舵手)에서 나온 말이다.

아무 말에나 그 상투 끝에 올라앉아 우리를 겁주고 주눅들게 하던 사이버라는 접두어도 이렇게 키잡이라고 생각하면 바닷바람의 감성으로 가까워진다. 배를 그대로 놔두면 똑바로 가지 않고 좌우 어느 쪽으로 진로를 이탈한다. 조타수는 오른쪽으로 벗어난다 싶으면 배의 키를 왼쪽으로 움직여 원래의 가운데 위치로 돌아오게 한다. 하지만 그 결과로 이번에는 배가 왼편 쪽으로 이탈해 간다. 키잡이는 다시 키를 오른쪽으로 돌려 원위치로 돌아오게 한다. 이렇게 좌우 양극을 향해 끝없이 요동치는 배를 감지해 수시로 그 방향을 똑바로 제어하고 그 움직임을 매끄럽게 하는 조타수의 예를 모델로 한 것이 다름 아닌 사이버란 말을 낳은 '사이버네틱스'의 이론이다. 위너의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배가 요동치는 것을 옥시레이션이라고 하고, 배의 이탈을 수시로 평가해 키의 방향을 바꿔가는 것을 '피드백'이라고 한다. 그래서 배가 항상 똑바른 가운데의 방향을 유지하는 것을 평형성(equilibrium)이라고 부른다.

이 이상 사이버네틱스 이야기를 하다가는 욕이 나올 것 같다. 겨우 좀 사이버라는 말이 편해진다 싶었는데 그보다 더 생소한 사이버네틱스란 말이 튀어나오게 되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그렇다면 서양 과학자들이 만든 말을 쓸 것 없이 옛날부터 우리가 남과 따지거나 다툴 때 곧잘 써오던 육두문자로 하자. 서로 의견이 좌우로 갈려 양극화로 치닫고 감정이 격화돼 '요동'을 칠 때 우리는 '좌우지간(左右之間)'에라고 뜸을 들이고 침을 가했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 조타수들이 보여줬던 좌우지간이요, 사이버네틱스에서 말하는 '피드백'과 '평형' 이론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물론이고 크거나 작거나 생명이건 무생물이건, 자연물이든 기계든 이 세상 모든 것엔 조타수처럼 키를 움직여 평형을 유지하려는 '좌우지간'의 공통언어가 있다. 그것을 과학적인 수리로 밝혀보려고 한 것이 위너와 같은 사이버네티스트의 꿈이었다.

사이버 공간을 초원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컴퓨터를 동작시키는 것을 장화를 신는다는 뜻으로 부팅이라고 하고 인터넷 세대들을 뉴 노마드(신 유목민)라고 부르는 것도 사이버 공간을 몽골의 초원쯤으로 생각하고 하는 소리다. 그래서 단지 뱃사공의 키를 양치기의 지팡이로 바꾸고 그 배를 초원의 양떼로 생각하면 좌우지간의 소리는 똑같다. 무리로부터 좌우로 이탈해 요동치는 양떼를 한가운데로 모아 똑바로 몰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또 바다도 초원도 아닌 사이버 도시라면 이미 앞에서 말한 대로 자전거를 타보면 된다. 세발자전거를 타던 아이들이 두발자전거로 바꿔타려고 할 때 좌우로 심하게 움직이는 앞바퀴의 핸들을 '좌우지간'으로 평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무릎을 깨뜨리게 될 것이다.

조타수처럼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고 양치기의 노마드처럼 정보의 초원을 횡단한다. 혹은 자전거를 타듯이 최초로 하늘을 난 라이트 형제처럼 정보의 아스팔트, 정보의 하늘을 비행하는 거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 바로잡습니다

1월 7일자 3면 '디지로그 시대가 온다⑦'칼럼 중 평형성(equrlibrium)의 철자가 틀렸습니다. equilibrium이 맞습니다.


2006.01.06 19:5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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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15. 한국의 인터넷 문화 '@골뱅이와 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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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주소 적는 법 하나에도 동서가 다르다. 우리는 나라에서부터 시작해 시→구→동의 순서로 자기 집 번지를 쓴 다음 마지막에 자기의 이름을 쓴다. 그러나 제임즈 조이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인상 깊게 묘사하였듯이 유럽의 경우에는 정반대로 자신의 이름을 맨 먼저 쓰고 나라에서 끝난다.

인터넷 전자메일이 생기면서 주소를 적는 이러한 차이는 이제 무의미해졌다. 골뱅이(@)만 달면 지구의 시민이 되어 누구와도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골뱅이가 국제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부르는 이름은 나라마다 다르다. 원래 @은 구텐베르크의 활자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호이지만 e-메일 표시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34년 전(1972년) 미국 BBN 회사의 레이 텀린슨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그것이 발신자의 위치표시를 나타낸 약호(略號)로 앳 사인 (at sign) 혹은 앳 심볼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람들은 '달팽이'라고 부르고, 독일 사람들은 '원숭이 꼬리'라고 한다. 동유럽의 폴란드나 루마니아에서는 꼬리란 말이 없어지고 그냥 '작은 원숭이'라고 부른다. 그런가 하면 북유럽의 핀란드에서는 '원숭이 꼬리'가 '고양이 꼬리'로 바뀌고, 러시아에서는 원숭이와 앙숙인 '개(소바카)'로 둔갑한다.

아시아는 아시아대로 다르다. 중국 사람들은 점잖게 쥐(鼠)에다 노(老)자를 붙여 '라오수(小老鼠)' 또는 '라오수하오(老鼠號)'라 부른다. 일본은 쓰나미의 원조인 태풍의 나라답게 '나루토(소용돌이)'라고 한다. 혹은 늘 하는 버릇처럼 일본식 영어로 '앳 마크'라고도 한다.

아무리 봐도 달팽이나 원숭이 꼬리로는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오리, 개, 그리고 쥐 모양과는 닮은 데라곤 없는데도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니 문화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다. 그러니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손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30여 개의 인터넷 사용국 중에서 @과 제일 가까운 이름은 우리나라의 골뱅인 것 같다. 골뱅이의 윗 단면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모양이나 크기까지 어느 나라 사람이든 무릎을 칠 것 같다. 더구나 e-메일의 @으로 찌개를 끓여먹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한국의 골뱅이뿐이다(물론 국제적으로 말썽이 많은 개와 달팽이를 뺀다면 말이다).

@을 '앳 사인'이라고 부르는 미국인들의 그 건조한 디지털적 논리에 비해 시각과 미각까지 겸한 아날로그 한국 골뱅이는 얼마나 직관적이고 감성적이냐. 로컬하면서도 글로벌한 '골뱅이'의 특성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벽을 넘어다니며 두 공간을 자유롭게 살고 있는 '번개미팅' 한국의 인터넷 유행에서도 발견된다. 말부터가 번개는 한국 토박이말이고, 미팅은 인터넷에서 80%를 점유한 영어다. 그러면서도 그 말이 줄어서 영어는 차차 자취를 감춰 번개로 통하고, 정규적으로 만날 때에는 '정모'가 되어 온라인.오프라인은 자연스럽게 온.오프로 스위치된다. 작은 인터넷 모임이 한국 전체의 거리와 광장을 뒤집어놓은 월드컵 붉은 악마의 힘도 그 골뱅이와 '번개'의 힘에서 나온 것이다.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일본에서 번개라고 하면 '피카추'의 전기 쥐 꼬리를 연상할 것이다. 그들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두 공간이 완전히 닫혀 있어서 인터넷에 한번 갇히면 영영 헤어나오지 못한다. '히키고모리'나 '파라자이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자폐증 환자들이다. 연일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목숨을 잃을지언정 한국의 젊은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바깥세상으로 나와 번개미팅을 한다. 그래서 일본의 관계자들은 한국의 인터넷 문화를 배워야 한다고 부러워한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16 19:2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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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23. 하이브리드 카 - 새 문명을 싣고 오는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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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디지로그 시대의 징후군을 알려면 자동차의 변화를 보아야 한다. 인류 최고의 발명이라고 하는 바퀴와 함께 인간의 문명은 태어났고 (그렇다. 이 지상에는 바퀴 달린 짐승이란 없다) 그와 함께 발전해 왔다. 사람의 근력(筋力)으로 끄는 인력거, 말의 축력(畜力)으로 움직이는 마차, 그리고 증기기관의 동력혁명을 거쳐 오늘의 화석연료로 달리는 자동차-그것들은 모두가 그 시대의 의미를 비춰주는 움직이는 거울이다.


그런데 지금 고유가 시대,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는 교토의정서, 석유 자원의 고갈 등 현대 문명사회의 과제 속에서 자동차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기 때문에 석유의 대체연료를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제러미 리프킨이 예고한 '수소혁명 시대'를 기다릴 것이고, 타조처럼 시속 100㎞로 뛰어도 엔진이 과열하지 않는 무공해차를 원하는 사람들은 바이오 시대의 미래를 꿈꿀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해 아카데미상 수상식장의 코닥 극장 앞에 스타들이 몰고 온 미래형 자동차는 뜻밖에도 볼품없는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카 프리우스였다. 서양 문명은 1 아니면 0이라는 이진법적 디지털 사고로 진행돼 왔다. 자동차 역시 처음에는 전기냐 가솔린이냐를 놓고 양자 택일의 논쟁을 벌였다. 에디슨은 전기 자동차를 개발 중이었었는데 당시 사원으로 있던 포드가 "전기 자동차는 발전소 부근밖에는 달릴 수 없다"고 지적하자 깨끗이 손을 들었다. 포드는 그때 이미 가솔린 엔진 차의 다량 생산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전기와 가솔린에 대한 지식은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폭발성이 강해 등유로 쓰지 못한 가솔린은 류머티즘의 약 이외로는 위험한 무용지물로 인식되던 때였다. 만약 에디슨이 쉽게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20세기의 문명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자동차의 역사로 비춰 볼 때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or)의 택일에서 벗어나 이것과 저것 (both and)을 아우른 하이브리드 엔진의 발상은 참으로 획기적인 것이라 평할 수 있다. IT 기술이 카 내비게이션이나 엔진 제어장치로만 사용돼온 종래의 메카트로닉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1NZ-FXE형 가솔린 엔진과 1CM형 전기 모터의 병용으로 출발한 THS의 구동 유닛은 앞으로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의 기계 기술이 융합된 새 문명을 부를 것이다.

시가지를 저속으로 달릴 때에는 200V 배터리의 전기 엔진으로 주행하고 고속도로나 언덕을 오를 때에는 가솔린 엔진을 사용해 달린다. 감속시에는 운동에너지를 회수해 충전할 수 있는 회생 브레이크가 작동된다. 이 같은 하이브리드 발상으로 배출가스는 75%(일본 기준) 낮아지고 연비는 ℓ당 20~30㎞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와 같은 환경 성능으로 할리우드의 스타들 사이에 프리우스를 몰고 다니는 유행이 생겨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여러 대를 한꺼번에 구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부(富)의 파워보다 환경의 클린 파워가, 순종(純種)보다 잡종(雜種)의 감각이 프리우스의 이름 그대로 (라틴어로 ~에 앞서다의 뜻) 시대를 앞서가는 조류를 타게 된 것이다.

아직은 많은 문제점과 전체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0.3%에 불과한 프리우스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평범한 기술의 비범한 결합'이라는 하이브리드적 발상법이 바로 한국인이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특성이라는 점. 그리고 서로 다른 시스템을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기술은 88번 손이 간다는 도작(稻作)문화권의 정성이 아니면 힘들다는 점이다. 비록 남의 나라에서 먼저 개발한 차지만 디지로그 시대를 이끌어갈 한국인에게는 용기를 주는 대목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25 19:2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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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28. 무지개 색깔을 묻지 말라 - 디지로그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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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무지개 색깔이 몇 색이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앵무새처럼 빨.주.노.초.파.남.보를 외울 것이다. 조석으로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디지털 신호가 만들어 내는 수천 수만의 색깔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대답한다. 교실 속의 무지갯빛이 일곱 색으로 고착된 것은 순전히 뉴턴의 스펙트럼 실험 때문이다. 그 자신이 실험실 조수에게 "너도 이 빛이 일곱 색으로 보이느냐"고 물었던 것을 보더라도 단지 뉴턴이 자의적으로 그렇게 나눠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훨씬 이전의 대석학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지개 색을 네 색으로 보았고, 세네카는 다섯 색, 그리고 마루켓리누스는 여섯 색깔로 구분했다. 또 아프리카의 쇼너어족은 3색, 바자어의 부족은 청색과 황색 두 색으로 나눈다. 놀라운 것은 식물학자들도 모든 꽃 색깔을 분류할 때 바자어족처럼 청색계와 황색계의 둘로 나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1 아니면 0 이라는 양분법적 디지털 사고가 아이들의 색채 개념을 빈약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말 사전에 수록된 색채들은 빨간색만 해도 56가지가 된다고 한다. 대체 어느 나라의 말이 빨갛다와 뻘겋다를 구별하고 발갛다와 벌겋다의 차이를 나타낼 수 있겠는가. 우리는 불그레와 불그스레가 다르고, 볼그레와 볼그스레가 서로 다른 미묘한 색채의 정감을 나타낸다. 거기에 불그스름과 불그죽죽의 꼬리까지 달라지면 색깔은 걷잡을 수 없이 가지를 친다. 그러나 이렇게 풍부한 색깔문화도 이념화하면 오방색이 된다. 거기에서 음에 속하는 흑백의 무채색까지 빼고 나면 청.홍.황의 삼 태극 빛만 남는다. 그래서 서양의 교통체계가 한국으로 오면 그린(綠)사인이 청색으로 둔갑한다.

'가재는 게 편이고 초록은 동색'이라고 이념적인 편 가름을 할 때에는 작은 차이는 무시돼 원색 안에 흡수된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초록색 신호를 뻔히 눈으로 보면서도 '청색 신호등'이라고 부른다. 이념은 색맹을 만든다. 그리고 다양한 색채를 죽여 오직 한 색만을 남기려 한다.

금욕적인 청교도였던 포드 1세는 검은색 자동차만을 생산해 왔다. 미국에서 자동차 색깔이 다양해진 것은 GM사에서 시작된 일로 그 뒤 탈이념적 시대에 들어서면서 색깔 옵션은 1700여 개로 늘어났다. 거기에 비해 우리의 자동차 색깔은 100색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소비자의 성향으로 흑백이 그 주류를 이룬다. 초등학교에 교육에서도 우리는 열 가지 색(10색상환)인데 다른 나라에서는 보통 84가지를 배운다. 그래서 한국색채연구소의 한동수씨는 1000여 색을 도입한 특수 유아교육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도루묵이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디지로그 사회를 선점하려면 우선 무지개 색의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아이들에게 빨주노초파남보를 외우게 할 것이 아니라 그 색채와 색채들 사이에 있는 것들, 아직은 이름조차 지어지지 않은 경계 영역의 어렴풋한 빛깔로 눈을 돌리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한 미래의 땅 빛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커서 오직 한 색깔의 크레용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왜 크레용 상자에는 자기가 필요로 하지 않은 색깔까지 들어가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는 컴퓨터의 컬러 바와 같은 색채는 아무 데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아이들이 만나는 색깔들은 이슬과 향기에 젖어 있는 붉은 꽃송이이거나 바람이 불면 짐승처럼 웅성거리는 초록색 이파리들이거나 혹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바다의 빛들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성서의 이 한마디 말은 꼭 기억해 둬야 한다. "생선을 달라는 아이에게 누가 뱀을 주겠는가." 하물며 아이들이 달라고도 하지 않은 뱀을 그것도 독 있는 뱀을 던져 주어서야 되겠는가.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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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1 20:3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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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4. 인터넷 속 세 왕자와의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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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디지로그 시대의 새 물결이라고 하면 '제3의 물결' 다음에 오는 제4의 물결쯤으로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물처럼 연속적으로 흐르는 문명을 제1이니 제2니 하는 순서로 분절하는 방법 자체가 이미 구시대적인 디지털적 발상이다. 앞으로 우리가 맞게 될 디지로그 시대란 스핑크스의 난문(難問)보다도 어려운 문제를 풀 때만이 도달할 수 있다. 그 수수께끼는 먼 나라의 공주에게 청혼하러 가던 세 왕자가 우연히 길에서 만나 보물 자랑을 하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그중 왕자 한명이 천리안의 거울을 보여주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어가는 공주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순간 천리마를 자랑하던 왕자는 천리 밖 공주의 성으로 단숨에 달려가게 되고 불사약을 비장했던 왕자는 그 약초를 먹여 극적으로 공주를 살려낸다.

문제는 이 공주가 누구와 결혼을 해야 되느냐 하는 수수께끼다. 정보 마인드를 지닌 네티즌들은 당연히 천리안의 왕자를 내세울 것이고 폭주족처럼 질주하는 산업주의자들은 천리마의 왕자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 웰빙족들은 농자천하지대본의 정신으로 불사의 약초를 먹인 왕자 편을 들 것이다. 하지만 세 보물의 수퍼 파워는 서로 연동해 작용했기 때문에 어느 왕자 하나만을 골라서는 절대로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할 수 없다. 어차피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택일적 강박관념 밑에서 살아온 서양 쪽에서는 해답을 구하기 힘들므로 동양 쪽 고전을 찾아보면 어떨까. 뜻밖에도 '천평어람(天平御覽)'의 고사에서 충격적인 해답 하나를 찾아낼 수 있다.

제(齊)나라에 사는 한 처녀가 두 남자에게서 청혼을 받게 되었는데 동쪽 마을에 사는 청혼자는 돈은 많으나 얼굴이 밉고, 서쪽 마을에 사는 청혼자는 얼굴은 잘났지만 가난해 먹을 것이 없다고 했다. 이 가운데 누구를 택하겠느냐는 부모의 말에 그 소저는 선뜻 두 곳으로 다 가겠다고 대답을 한다. 밥은 부잣집 동쪽 남자에게로 가서 먹고, 잠은 잘생긴 서쪽 남자와 자면 된다는 것이다.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으로 알려진 이 이야기가 얼마나 황당했으면 뒤에 떠돌이를 뜻하는 말로 와전돼 내려왔겠는가. 이 동서 병합의 모순논리를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해 보면 틀림없이 에러 메시지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동가식서가숙'의 모순논리는 인터넷 사이버 세상에선 보통 일어나는 일이고 오프라인의 현실에서도 곧잘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이다. 아니다. 그것은 제3의 물결 다음에 오는 현대문명의 출구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아날로그적인 것은 악이고 구식이고, 디지털적인 것은 선이고 첨단이라는 양자택일의 틀이 무너지고 있다. 비트와 아톰, 클릭 산업과 브릭(brick) 산업,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이 모든 대립은 깨끗하게 금이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혼류(混流)하고 융합되고 충돌하면서 병존해간다. 이종 결합의 하이브리드나 원 소스 멀티 유스와 같은 말이 그 단편적인 징후를 보여준다.

해답과 선택은 오직 하나라는 종래의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비로소 공주는 세 왕자와 결혼할 수 있다. 그리고 불사의 약초가 지닌 생명력, 천리마의 산업적 동력, 그리고 천리안의 정보의 힘은 프랑스의 3색기와 같은 평행선이 아니라 서울 올림픽 로고였던 3태극마크처럼 둥글게 둥글게 얽혀서 돌아가야 한다. 시루떡 정보가 '탠지블 미디어'로 부상하고 젓가락 정신과 기술이 관계기술(RT)의 원천으로 각광받는 세상이다.

어려운 이야기 할 것 없다. 이 지구상에서 농경-산업-정보 세 문명의 왕자를 동시에 데리고 사는 유일한 공주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 한국인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엊그제까지 나물 캐던 채집시대에서 초고속 정보시대의 선두에 서 있는 나라, 망신스럽기도 하고 한없이 자랑스럽기도 한 이상한 나라, 붉은 악마가 외치던 대~한민국이다.

이어령 중앙일보사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03 19:2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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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12. '칵테일 파티 효과'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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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문 닫고 들어오라"는 말은 틀린 말일까. 기계 중심의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바람도 아닌데 어떻게 문을 닫고 들어올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럽게 통해온 말이다. 단지 '들어오다'와 '문을 닫다'의 두 언표(言表) 가운데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강조하기 위해 문을 닫으라는 말이 앞에 나온 것뿐이다.

인지 과학자들이 말하는'칵테일 파티 효과'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칵테일 파티장은 그야말로 사람들의 말소리까지 칵테일돼 뒤얽혀 있다. 그런 잡음 속에서도 용케 사람들은 각자가 불편 없이 대화를 나눈다. 거기에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와 말을 나누고 있는 장면을 본 부인이 있었다면 잡음 속에 섞여 있는 대화 내용을 금세 엿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질투심이 불러일으킨 초능력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듣고자 하는 소리를 식별해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인간의 귀는 잡음을 수동적으로 균질하게 기록하는 녹음기와는 다르다. 현상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중시해온 '지향성'의 문제다. 인간의 지향성이 컴퓨터 관련 과학자들에 의해 주목을 받게 되면서 '칵테일 파티 효과'라는 조금은 사치스러운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어째서 100년 전의 키보드를 그대로 두드려야 하는가 하는 불평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컴퓨터에는 필요한 소리만 걸러내는 인간 같은 '칵테일 효과'의 지향성이 없다. 그래서 잡음이 없는 환경에서만 음성인식 기술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잡음과 함께 살아온 인간이다. 조용한 산사에 가도 풍경소리가 울리지 않는가.

원래 1, 0으로 된 디지털 신호는 아날로그의 잡음을 제거하는 뛰어난 능력을 과시해 온 것인데 아니로니컬하게도 막상 자연공간에서는 그와 정반대의 약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지향성 마이크란 것을 개발했지만 인간의 칵테일 효과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컴퓨터를 기계 중심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애매성, 비조직성, 주의산만, 감정적, 그리고 비논리적이다. 그런데 기계는 반대로 정확성, 조직적, 주의의 고정성, 그리고 감정에 흐르지 않고 논리적이다. 한마디로 기계는 사람보다 우수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보면 그 평가는 물구나무 서기다. 기계는 우직하고 반복적인데 비해 인간은 창조적이다. 기계는 융통성이 없고 변화에 둔감하고 또 상상력이라는 것이 전연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황에 따라 금세 적응하고 임기응변을 할 줄 안다. 무엇보다 "나는 생존하기 위해 꿈꾼다"는 스필버그의 말대로 인간은 꿈꿀 줄 안다.

이렇게 노먼이 제시한 기계와 인간의 두 가치 패러다임을 놓고 볼 때 컴퓨터와 인간의 동거는 엔지니어의 남편과 시인의 아내가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엔지니어는 기계의 이치는 알아도 사람의 마음은 읽을 줄 모르고 시인은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기계에 대해서는 낯설다.

또 위에서 비교한 인간 대 기계의 서로 다른 관점을 살펴보면 서구문명권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기계중심적 관점에 서 있고 아시아 문명권에 살아온 한국인들은 보다 인간 중심적 관점에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IT는 산업시대의 기계기술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디지털 기술이 진화되려면 아날로그의 수혈을 받아야 한다. 정보시대의 디지털 혁명은 컴퓨터를 닮은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컴퓨터가 모르는 '칵테일 파티 효과'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진화한다. 아날로그적 시인이 만든 디지털 문화, 그것이 미래의 우리 블루 오션이기도 하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12 19:2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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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20. 공명실 속의 인터넷 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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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누구나 어렸을 때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큰 독이나 목욕탕 속에서 노래를 부르면 갑자기 자기 목소리가 크게 울리면서 도밍고나 파바로티 같은 성악가가 된 느낌을 받는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이 같은 에코 체임버(공명실) 효과라고 부르는 환각작용이 일어난다.


'구글'의 검색에서 와일드카드로 '*사모'라고 치면 34만8000개의 검색 결과가 뜬다. 물론 중복된 항목과 한자말의 사모(思慕)까지 합쳐진 숫자를 감안한다 해도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의 인터넷 모임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보여준다. 이제는 연설문이나 광고문에서 '강호제현!''사천만 동포'라는 그 구식 정형구가 사라진 것을 보더라도 우리는 이미 수많은 분극화(세그먼트) 사회로 접어들고 있음을 안다.

실상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 혹은 무슨 일인가 좋아서 모인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론상으로 봐도 인터넷 공간은 얼마든지 낯을 모르는 사람, 의견이 서로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특성 때문에 정보의 홍수 현상이 일어나고 익사 직전의 개인들은 '나'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밀폐된 '노아의 방주' 속으로 들어간다. 그 때문에 인터넷 공간은 장독 같은 좁은 공명실로 바뀐다. 환청 속에서 개인은 점점 비대화.극대화하고 과격해지면서 자기가 아는 세계로만 쏠리게 된다.

현실에서 듣던 진짜 자기 목소리는 멀어지고 대신 명가수가 된 것 같은 환상의 목소리가 자신을 지배한다. 거기에서 타자와의 상호이해가 전연 불가능한 분극화의 디지털 집단이 탄생한다. 그러한 사이버 집단은 종래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볼 수 있는 몸(자신)-가족(기업.사회)-나라-천하(세계)의 차례로 일관되게 발전해 가는 전통적인 공동체와는 전연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

무명의 레슬러 출신 벤추러가 3000명의 제시 네트(우리로 말하면 '벤사모') 그룹의 인터넷 힘으로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전에서 막강한 공화.민주 양당의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됐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전자 민주주의의 앞날에 막힐 것이 없다"고 낙관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명실 효과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캐스 R 선스틴과 같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인터넷은 민주주의 편인가 적인가?

정치적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같은 의견을 주고받고 확신하고 앵무새처럼 공명(共鳴)의 메아리를 반복하다 보면 그 목청은 점점 커지고 과격해져서 주위로부터 고립되고 만다. 예상치 않던 기회와 우연한 접촉에 의해서 광범위한 공통의 체험을 쌓아가고, 의견이 다른 타자의 다양한 생각을 수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시스템이다. 자기 입맛에만 맞는 정보만을 증폭시켜 주는 공명실 안에서는 그런 우연한 접촉의 기회가 일어나기 어렵다. 그 결과로 중상.모략.비방.명예훼손 등 온갖 악성 루머와 괴담이 걸러지지 않은 채 헐크처럼 커져 현실 밖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요즘 유행하는 '넷심'이라는 여론이다.

그래서 추돌사고를 낸 티코의 젊은이가 "나 네티즌이야"라고 하자 큰 차에 타고 있던 정부 요인이 운전기사를 떠밀고 나와 "미처 몰라뵈었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는 티코 시리즈 농담 신 버전도 생겨났다. 인터넷 게시판에 오르는 심판은 방청객만 있고 변호사도, 판사도 없는 단심제의 법정과도 같은 것이니 무서워할 만도 하다.

인터넷은 민주주의의 후원자인가 적인가. 그것은 SHELL 법칙(9회 참조)대로 인터넷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에 작용하는 라이브웨어(인간)의 성격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22 2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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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25. 숨겨진 수염을 찾아라 태극무늬의 비전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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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긴 수염을 기른 노인이 길을 가는데 어린아이가 쫓아와 물었다. "주무실 때는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세요? 빼고 주무세요?" 할아버지는 한참 생각해 봤지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오늘 밤 자 보고 내일 일러 주마. 잠자리에 든 노인은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잤지만 답답한 생각이 들어 꺼내 놓고 잔다. 그러자 이번에는 허전한 생각이 들어 다시 이불 속에 넣는다. 노인은 밤새도록 수염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지금까지 어떻게 하고 잠을 잤는지 끝내 아이의 질문에 답변하지 못했다.

관운장 수염으로도 알려진 이 일화는 외국인이 태극기에 대해 질문할 때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제임스 콜린스와 제리 포라스 두 교수가 쓴 경영학 저서('Built to Last')에서 장(章)마다 찍힌 태극 아이콘을 발견했을 때의 그 당황스러운 느낌도 그런 것이다.

두 교수는 '변화냐 안정이냐, 신중이냐 모험이냐, 저 코스트냐 고품질이냐, 가치 존중의 이상주의이냐 이익 추구의 현실주의냐' 라는 여덟 개의 대립 항목을 만들어 100년간 미국 기업들의 행태를 분석.조사해 봤다. 그 결과 그들이 알아낸 것은 100년 동안 지속적으로 번영.발전해 온 기업들은 모두가 태극 모양의 비전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or의 억압'에 굴복한 기업은 흥하다가도 금세 소멸해 버리고, 반대로 이것과 저것을 함께 지닌 'and의 능력'을 가진 회사는 100년의 번영을 누렸다.

역설적인 생각을 피하거나 모순되는 힘과 생각을 동시에 추구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A 아니면 B의 택일적 사고에 의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윈-윈'전략처럼 A와 B의 양극을 동시에 추구해 성취한 기업들은 음의 꼬리에 양의 머리가 오고 양의 꼬리에는 음의 머리가 이어져 돌아가는 태극 모양을 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이 두 개의 대립을 하나로 합쳐 그 중간을 취하는 절충이 아니라 모순되는 쌍방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 동시에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태극의 음양과 같은 힘이라고 설명한다.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해병대는 해군과 육군을 그냥 혼성한 집단이 아니다. 바다냐 육지냐의 택일이 아니라 바다에서도 육지에서도 동시에 싸울 수 있도록 한 양서류(兩棲類) 같은 신개념에서 태어난 유니크한 군대 조직인 것이다. 그래서 경영 마인드에 '태극 무늬를 단 기업(비저너리 컴퍼니)'들은 동서 가릴 것 없이 해병대처럼 강하다.

공자는 너무 옛날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새롭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H 핑가레트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서양 사람들은 어떤 의무가 서로 충돌할 때 그중 하나를 선택하려 들지만 공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논어'에서 양을 훔친 아버지의 고사를 통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또 양자론 연구의 공적으로 귀족의 작위를 받게 된 닐스 보어도 자신의 이론을 보여 주기 위해 태극 문장을 단 예복을 입고 식장에 나타났다. 태극 도형 둘레에는 'CONTRARIA SUNT COMPLEMENTA'라는 라틴어가 적혀 있었다. 대립(對立)하는 것은 상보(相補)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IMF, e-커머스의 버블, 그리고 반기업 정서의 도전들은 한국 기업들의 수염에 대한 질문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or의 억압'을 'and의 능력'으로 바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음양 상보하는 태극 마크를 비전으로 삼는 것- 그것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28 05:0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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