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로그'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07/03/21 이어령 교수님 특강과 디지로그 책을 읽고..
  2.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10. 컴퓨터는 셈틀이 아니다
  3.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18. 사이(間) 문화가 낳은 싸이 문화
  4.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6. 쥐를 이기는 방법, 바이오닉스
  5.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 시루떡 돌리기 정 담은 정보 원리
  6.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15. 한국의 인터넷 문화 '@골뱅이와 번개'
  7.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3. 하이브리드 카 - 새 문명을 싣고 오는 바퀴
  8.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30회 시리즈를 마치며 "디지로그 시대가 온다. 디지털 강국서 한 발짝 더…한국문화와 융합하라"
  9.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7. 사이버 항해의 키워드 '좌우지간'
  10. 2006/04/01 [디지로그시대가온다] 12. '칵테일 파티 효과'를 아십니까?

이어령 교수님 특강과 디지로그 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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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님 특강에서 느꼈던 가장 큰 감동은 이어령 교수님의 애국심입니다.

조목 조목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 한말씀 한말씀 속에는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한국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위한 애닮은 걱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 나라가 지금 이렇게 일어섰지만, 곧 필리핀과 같이 무너질 수 있겠다는 걱정.. 이 나라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 우리가 찾아봐야할 것들이 무었인지 알려야겠다는 열정.. 디지로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잊고있었던 한국적인 정서와 디지털 세계에 앞장설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워 주시는 애정..

저는 이어령 교수님의 특강을 들으면서 그분의 정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를 바라보는 듯한 정을..

그 정을 이어령 교수님의 디지로그 책에서도 느꼈습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약간의 논리적인 비약도 있었습니다. 청룡열차같은 정치를 이야기할때는 우리나라에 대한 참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떡 문화에 대하여 이야기하실때는 우리나라의 참된 정이 무었인지 느끼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령 교수님께서 특강을 통하여 우리에게 시루떡을 돌리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떡을 받아봄으로써 떡을 돌리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그 집안에 어떤 일이 있는지 알 수 있게되는 우리의 떡문화!

이어령 교수님은 우리에게 디지털 떡에 한국적인 아날로그라는 콩고물을 가득올려서 저희에게 아주 맛난 떡을 돌리신 것입니다.

우리의 떡 문화는 돌리고 돌리게 되어있습니다. 나도 떡을 받으면 언젠가는 남에게 떡을 돌리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정보는 돌아다닙니다.

디지털도 마찬가지 입니다. 디지털 정보도 우리가 돌리고 돌리면서 정보가 돌아다닙니다.이어령 교수님은 우리가 이렇게 디지로그를 서로에게 돌리고 돌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단지 디지털이 아닌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골고루 묻힌 디지로그를 돌리기를 원하신는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디지털에 어떤 아날로그를 올릴지는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이 떡을 받을 사람을 생각하는 미덕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떡 문화처럼, 저역시 제가 만드는 디지로그를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맛도 좋고, 빛갈도 좋고, 냄새 또한 죽이는 디지로그를 만들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새로운 디지털 문화에 대하여 생각해왔는데 이번 특강을 통하여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어령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 정 같이 나누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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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17. 6차 분할의 원리와 싸이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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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웹2.0이란 무엇인가. 누구도 확실하게 대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종래의 인터넷 웹사이트와 비교해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더블 클릭'의 검색엔진이 1.0의 구버전이라면 '구글'은 2.0의 신버전이다. 홈페이지가 구버전의 것이라면 블로그는 신버전에 속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취미와 기호에 따라 모이던 인터넷 동호회나 '아이 러브 스쿨' 같은 아는 사람끼리의 버추얼 커뮤니티가 구버전이라면 6차 분할의 원리(6 degrees of separation)의 개념으로 만든 그것은 신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6차 분할'의 이론이라고 하면 남의 동네 이야기라고 미리 낯부터 가리겠지만 사실은 한국인에게 더 가까운 개념이다. 객줏집 같은 곳에서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만나 통성명을 했다고 하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뜻밖에도 그들이 다 같이 알고 지내는 사람 이름이 나오게 된다. 그러면 벌써 그들은 남이 아니다. 반색을 하고 다시 인사를 나누며 이렇게 말한다. "세상 참 좁네요!"

이 '좁은 세상'의 현상을 사회학자나 수학자들이 밝혀 내려 한 것이 바로 6차 분할의 원리라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서로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다 아는 사람이 된다'라는 가설이다. 그 용어는 1930년대의 헝가리 작가 카린디의 단편 '사슬'에서 따온 것으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연극.영화.게임 등의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어 온 말이다. 다만 왜 그게 하필 6이냐. 호프집에서 맥주를 시킬 때에도 "한 두서너 병" 가져오라고 말하는 한국인이라면 그냥 '서너 다리 건너기'라고 하면 될 것을 가지고 헷갈리게 만든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또 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도 숫자로 꼭 짚어 말하려는 서양인들의 디지털적인 표현이 문제다. 한국의 시골 농부들은 "서너 다리 건너서 모르는 사람 있나?, 처음 본다고 티격태격하지 말고 잘들 지내여"라고 말한다. 그렇다. 그런 감각에서 나온 것이 지금 인터넷의 화두가 되어 있는 2.0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커뮤니티 사이트들이다. 처음 생긴 6degrees.com은 문을 닫고 말았지만 2003년 3월에 출범한 실리콘밸리의 프렌드스터는 불과 반 년 만에 100만 명 이상의 회원을 돌파해 새 인터넷 시대의 총아로 부상했다.

종전의 인터넷 동호회들은 기호나 취미만 같을 뿐이지 거의 다 낯선 사람들이다. 그 익명성으로 가려진 인간관계는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고 거칠어질 수도 있다. 반대로 동창회처럼 아는 사람들만이 모이는 버추얼 커뮤니티는 오프라인의 인간관계를 연장한 것으로 그 폐쇄성의 벽을 넘지 못한다.

그렇다. 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약점을 뚫고 연분이라는 '좁은 세상'의 인간관계를 사이버 공간에 살려 방대한 인간사슬, 광대한 인간지도의 디지로그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 웹2.0의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다.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자기조직화의 증식작용을 거듭하며 번져 가는 이 '미지의 가치' 방앗간을 웹2.0의 선두주자 구글의 참새가 그냥 지나갈 리 만무하다.

프렌드스터를 3000만 달러로 매수하려다 실패한 구글은 독자적으로 28세의 젊은 사원 오큣에게 맡겨 개발자 이름을 그대로 딴 '오큣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www.orkut.com)를 만들었다. 직접 회원이 된 사용자의 실례를 보면 62명의 지인 등록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은 그들의 연줄을 타고 40만 명을 넘는 지인들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인터넷의 SNS 사이트가 세계 도처에서 돋아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천지개벽처럼 나타난 한국의 싸이월드가 인터넷 공간에 지진을 일으켰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국 인구 절반을 휩쓸어 소셜 네트워크로 끌어들인 싸이월드의 기적이야말로 '서너 다리 건너기'의 한국적 연분 '사이'문화가 사이버의 '싸이'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18 20:4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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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25. 숨겨진 수염을 찾아라 태극무늬의 비전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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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긴 수염을 기른 노인이 길을 가는데 어린아이가 쫓아와 물었다. "주무실 때는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세요? 빼고 주무세요?" 할아버지는 한참 생각해 봤지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오늘 밤 자 보고 내일 일러 주마. 잠자리에 든 노인은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잤지만 답답한 생각이 들어 꺼내 놓고 잔다. 그러자 이번에는 허전한 생각이 들어 다시 이불 속에 넣는다. 노인은 밤새도록 수염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지금까지 어떻게 하고 잠을 잤는지 끝내 아이의 질문에 답변하지 못했다.

관운장 수염으로도 알려진 이 일화는 외국인이 태극기에 대해 질문할 때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제임스 콜린스와 제리 포라스 두 교수가 쓴 경영학 저서('Built to Last')에서 장(章)마다 찍힌 태극 아이콘을 발견했을 때의 그 당황스러운 느낌도 그런 것이다.

두 교수는 '변화냐 안정이냐, 신중이냐 모험이냐, 저 코스트냐 고품질이냐, 가치 존중의 이상주의이냐 이익 추구의 현실주의냐' 라는 여덟 개의 대립 항목을 만들어 100년간 미국 기업들의 행태를 분석.조사해 봤다. 그 결과 그들이 알아낸 것은 100년 동안 지속적으로 번영.발전해 온 기업들은 모두가 태극 모양의 비전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or의 억압'에 굴복한 기업은 흥하다가도 금세 소멸해 버리고, 반대로 이것과 저것을 함께 지닌 'and의 능력'을 가진 회사는 100년의 번영을 누렸다.

역설적인 생각을 피하거나 모순되는 힘과 생각을 동시에 추구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A 아니면 B의 택일적 사고에 의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윈-윈'전략처럼 A와 B의 양극을 동시에 추구해 성취한 기업들은 음의 꼬리에 양의 머리가 오고 양의 꼬리에는 음의 머리가 이어져 돌아가는 태극 모양을 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이 두 개의 대립을 하나로 합쳐 그 중간을 취하는 절충이 아니라 모순되는 쌍방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 동시에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태극의 음양과 같은 힘이라고 설명한다.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해병대는 해군과 육군을 그냥 혼성한 집단이 아니다. 바다냐 육지냐의 택일이 아니라 바다에서도 육지에서도 동시에 싸울 수 있도록 한 양서류(兩棲類) 같은 신개념에서 태어난 유니크한 군대 조직인 것이다. 그래서 경영 마인드에 '태극 무늬를 단 기업(비저너리 컴퍼니)'들은 동서 가릴 것 없이 해병대처럼 강하다.

공자는 너무 옛날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새롭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H 핑가레트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서양 사람들은 어떤 의무가 서로 충돌할 때 그중 하나를 선택하려 들지만 공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논어'에서 양을 훔친 아버지의 고사를 통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또 양자론 연구의 공적으로 귀족의 작위를 받게 된 닐스 보어도 자신의 이론을 보여 주기 위해 태극 문장을 단 예복을 입고 식장에 나타났다. 태극 도형 둘레에는 'CONTRARIA SUNT COMPLEMENTA'라는 라틴어가 적혀 있었다. 대립(對立)하는 것은 상보(相補)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IMF, e-커머스의 버블, 그리고 반기업 정서의 도전들은 한국 기업들의 수염에 대한 질문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or의 억압'을 'and의 능력'으로 바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음양 상보하는 태극 마크를 비전으로 삼는 것- 그것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28 05:0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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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1. 디지로그<디지털 + 아날로그> 시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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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디지털 기술로 절대 채울 수 없는 것은 설날의 떡국 맛이다. 컴퓨터가 천 번 만 번 까무러쳐도 안 되는 것이 미각의 씹는 맛이다.'겨울 연가'의 영상미로 물꼬를 튼 한류에 '대장금'의 음식문화가 결정타를 '먹인'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는다. 그리고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같은 동양문화권인데도 중국 사람들은 나이를 첨(添)한다고 하고 일본 사람들은 도루(取)한다고 하는데 유독 우리만이 먹는다고 한다. 이 지구상에는 3000종 이상의 언어가 있다고 하지만 나이를 밥처럼 먹는다고 하는 민족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되는지를 묻는 환자에게 "나이만 먹지 말고 다 먹어라"고 했다는 어느 의사의 이야기는 한국인만이 웃을 수 있는 우스갯소리다.

시간을 상징하는 그리스신화의 크로노스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먹어버린다. 하지만 한국인은 매년 설이 되면 자식까지 삼켜버린다는 그 무시무시한 크로노스를 먹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 음식이나 시간만이 아니다. 마음도 먹는다고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한국인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돈도 떼어먹고 욕도 얻어먹고 때로는 챔피언도 먹는다. 전 세계가 한점 잃었다(로스트)고 하는 축구경기에서도 우리 '붉은 악마'는 한 골 먹었다고 한다. 모든 층위에서 먹는다는 말은 유효하다. 심리적으로는 겁을 먹고 애를 먹는다. 소통 행위에서는 "말이 먹힌다" "안 먹힌다"고 하고 경제 면에서는 경비를 먹거나 먹혔다고 한다. 심지어 성애의 차원에서는 따먹었다는 말까지 등장한다.

어찌 그것이 자랑일 수 있겠는가. 먹는다는 말이 이처럼 다원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네그로폰테처럼 "빙 디지털!" "이제는 디지털이다"라고 외치는 젊은이들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분명히 먹는 걱정을 하던 시대는 갔다. 지금은 대통령도 인터넷 댓글로 정치를 하는 희한한 정보시대가 아닌가.

오늘 아침에도 누리꾼들은 밥상이 아니라 컴퓨터 앞에 앉아 새해 인사를 나누었을 것이다. MP3의 디지털 음악으로 해피 뉴 이어의 노래를 듣고 신데렐라 마차 같은 팬시한 연하장을 e-메일로 받았을 것이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화상 채팅으로 얼굴을 맞대고 실시간 대화를 즐겼을 것이다.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가상현실(VR)의 삼차원 공간에서는 센서 글러브를 끼고 보조장치만 갖추면 실제 현실 그대로 보고 듣고 만지기도 한다. 이미 일본에서는 냄새까지 맡는 향기통신의 웹 사이트도 생겼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로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설날의 떡국 맛이다. 모든 감각을 모두 디지털화해 보낼 수 있지만 컴퓨터가 천 번 만 번 까무러쳐도 안 되는 것이 미각의 씹는 맛이다.

그러기에 애플 컴퓨터의 로고는 입으로 반쯤 저며 먹은 모양을 하고 있고 실리콘 밸리의 마돈나 킴 폴리제는 인터넷 쌍방향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그 이름을 커피 브랜드인 '자바'에서 따다 붙였다. PC방을 인터넷 카페라고 부르는 것처럼 모두가 먹을 수 없는 디지털 미디어에 미각 이미지를 보완하려는 고육지책의 산물이다.

정보사회에서 '미각'은 디지털화할 수 없는 최후의 아날로그적 감각과 그 가치를 상징하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생물적이나 경제적인 시각에서 보아왔던 식 문제를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정보 미디어로서 평가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먹는 음식을 예부터 의식동원(醫食同源)으로 생각해 왔던 한국인에게는 선식(仙食)의 경우처럼 신선(神仙)의 종교적 의미까지 지니게 된다. '겨울 연가'의 영상미로 물꼬를 튼 한류에 '대장금'의 음식문화가 결정타를 '먹인'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의식동원의 전통이 한류 문화를 타고 문식동원(文食同源)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먹는 것이 문화라는 것은 사과를 놓고 보면 안다. 근대 민주주의는 윌리엄 텔의 사과에서 나왔다고 하고, 근대의 과학은 뉴턴의 사과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리고 트로이의 전쟁을 일으킨 아프로디테의 사과가 전쟁사의 시작이라면 스티브 잡스의 애플 컴퓨터의 사과는 PC 역사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가 먹는 미각의 사과는 아니다.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는 것만으로는 사과와 나의 거리를 메울 수 없다. 오직 그것을 입에 넣고 씹는 순간에만 사과는 비로소 미각을 통해 통째로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나와 사과는 한 몸이 된다. 미각의 힘, 씹는 그 힘은 밖에 존재하는 타자를 나와 하나가 되게 하는 유일한 융합의 힘이다. 동시에 그 대상을 파괴해야만 먹을 수 있는 공격성과 비극성도 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따 먹은 순간에서부터 시작된 길고 긴 인간의 외로운 역사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최후의 만찬은 먹는다는 것이 단순한 배부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수많은 말씀과 이적을 보여주신 예수님이 어째서 마지막 메시지를 '먹는 것'으로 끝마무리했는가. 왜 그 흔한 한 조각의 빵을 자신의 육체라 하고 그 값싼 한 방울의 포도주를 자신의 피라고 했는가. 십자가는 혼자 지고 가도 식사만은 홀로 할 수 없었던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제자들은 지금까지 보고 듣고 냄새 맡던 그 메시지(정보)를 어금니로 깨물어 삼키는 법을 깨닫게 된다. 빵이 되고 술이 된 예수는 단절됐던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미디어로서 존재한다.

먹는 것의 일체감, 그리고 그 융합의 원리는 오늘날 '회사'를 의미하는 컴퍼니(company)란 말에서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컴'은 '함께'(共), '퍼니'는 '빵'이라는 뜻이다. 어원대로 하자면 컴퍼니는 일터이기에 앞서 함께 빵을 먹는 식탁이다. 운동권에서 잘 쓰는 캠페인이란 말과 혁명가들이 애용하는 컴패니언(동지)이란 말 모두는 같은 뜻을 지닌 파생어다. 그렇다. 우리는 벌써 그런 공동체 의식을 "한 솥의 밥을 먹는다"는 말로 절묘하게 표현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식(食)문화의 공동체가 사이버 문화의 디지털 공동체로 급속히 변해가는 것이 오늘의 정보사회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날로그 인간형과 디지털 인간형으로 분리되고, 그 생활은 비트와 아톰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양극화해 간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생기기 전에 이미 시인 T S 엘리엇은 정보시대의 상황을 이렇게 노래 불렀다.

"생활(living)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삶(life)은 어디에 있는가. 지혜(wisdom)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생활은 어디에 있는가./ 지식(knowledge)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정보(informaiton)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그의 시 '바위'에 의하면 인간의 문명은 생명의 삶으로부터 끝없는 상실의 단계를 거쳐 오늘의 정보시대로 추락해 온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당연히 오늘의 디지털 세대들은 정보 속에서 생생한 삶과 지혜, 그리고 지식을 씹을 수 있는 어금니를 잃어간다는 이야기가 된다.

비유가 아니라 디지털 세대들은 실제로 씹는 습관을 잃어가고 있다. 2000년 전 인간의 식사시간은 51분이고 씹는 횟수는 3990회로 추정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일본 초등학교 급식 조사에서 나타난 것을 보면 씹는 횟수는 700~500회로 7분의 1로 줄어들었다. 음식만이 아니다. 정보시대의 아이들은 클릭 하나로 삶의 문제들을 씹지 않고 삼켜버린다.

디지털 혁명의 장밋빛이 조금씩 먹구름과 거품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금 양극화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틈새에 다리를 놓아주는 누군가의 힘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새해가 되면 떡국과 함께 나이(시간)도 마음도 새로 먹는다는 한국인들이야말로 디지털의 공허한 가상현실을 갈비처럼 뜯어먹을 수 있는 어금니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이버의 디지털 공동체와 식문화의 아날로그 공동체를 이어주는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파워가 2006년 희망의 키워드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디지로그의 뉴 파워가 무엇인지 성급하게 묻지 말고 이번만은 차분히 함께 검증해 보지 않겠는가. 줄기세포처럼 정말 그런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그런 원천기술을 보유하고나 있는 것인지 더 이상 기대가 실망이 되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일이 없도록 그야말로 큰 마음 먹고 시작해야 한다.

이어령 본사고문
사진=신인섭 기자 <
shinis@joongang.co.kr>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 바로잡습니다

1월 1일자 2면 '디지로그 시대가 온다①' 기사에서 <"식(食)문화의 공동체가…> 부분에 불필요한 겹따옴표(")가 끼어들었습니다.

2005.12.31 04:5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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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9. SHELL은 정보시대 약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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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SHELL은 조개도 석유회사 이름도 아니다. 소프트웨어의 S, 하드웨어의 H, 그리고 환경(environment)의 E와 인간을 의미하는 라이브웨어(Liveware)의 L자의 머리글자를 짜맞춰서 만든 항공관계의 휴먼팩터의 모델이다. 원래 버밍엄대 교수였던 앨빈 에드워즈가 만든 당시(1972)에는 라이브웨어가 하나밖에 없었던 것을 뒤에 프랭크 호킨스가 L 하나를 더 집어넣어 개선한 것이다. 본인 자신이 KLM의 기장 출신이어서 자신의 현장경험을 토대로 라이브웨어를 더 세분한 모델을 만든 것이다.

비행기를 보면 누구나 처음에는 그 기계에 정신이 쏠린다. 조종실에 들어가도 조종사는 보이지 않고 빡빡하게 들어찬 수백 개의 계기와 조종 스위치가 눈에 띈다. 그러나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나면 그러한 기계들을 움직이는 매뉴얼이나 항법지도와 같은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조종석에 조종사가 앉기 전에는 최신형 비행기도 달구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아닌 말로 라이브웨어(조종사)가 파업을 하게 되면 비행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헌신짝이다.

그렇다고 조종사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다. 부조종사와 기관사가 있고, 객실에는 스튜어디스와 승객도 있다(그래 가끔 손님 중에는 하이재커나 테러리스트가 있다). 그리고 하늘만이 아니라 지상에 있는 정비사와 회사 임원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자연히 라이브웨어는 하늘과 땅의 두 영역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하드, 소프트, 라이브의 세 웨어는 콕피트(cockpit)라 불리는 조종실의 공간과 기상과 기류 조건의 하늘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만약 그중 한 글자라도 이가 빠지거나 궁합이 안 맞으면 비행기는 그 자리에서 추락하고 말 것이다. SHELL이 HELL(지옥)이 되고 비행기는 고철로 SELL된다. 말장난을 할 때가 아니다. 실제로 1977년 3월 카나리아 군도의 활주로에서 네덜란드의 KLM과 팬암의 두 보잉-747기가 충돌해 583명이 죽었다. 항공사상 유례없는 이 대참사 이후 총제적 시점으로 비행기를 바라보는 SHELL 모델은 급속히 부상하게 된다.

사고의 원인은 농무(濃霧-E), 관제탑과의 교신 때 일어난 오해와 혼신(混信-노이즈 H-S)이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기장과 기관사의 인간관계(L, L)라는 라이브웨어였다. 이륙하려던 기장에게 기관사는 아직 팬암기가 활주로에 있을지 모른다고 귀띔을 했다. 만약 기장이 기관사의 말을 존중해 그 말을 좀 더 귀담아 들었더라면, 혹은 그 기관사가 기장의 권위에 눌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했었더라도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드웨어 중시의 사회에서 라이브웨어(인간)의 중요성을 알리는 대목이다.

그래서 SHELL 모델은 비행사고의 규명이나 조종사와 정비사의 훈련에만 유효한 모델이 아니다. 열차, 선박 등 모든 승용물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바퀴를 보면 돌리고 싶다는 시인의 말대로 승용물들은 인간의 욕망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몸, 가족 그리고 회사와 나라 역시 하나의 배나 비행기로 생각한다. 인류 전체가 분당 약 27㎞의 스피드로 회전하는 지구호를 타고 하루를 운항한다. 왜 우리는 침몰한 지 100년이 넘는 타이타닉호에 그리도 집착하는가. 왜 아이들은 은하철도와 비행접시의 환상에 빠져 있는가.

항공의 SHELL 모델을 응용하면 정보사회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그리고 디지털 환경, 라이브웨어의 내.외 다섯 요소를 총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당연히 디지로그 시대의 현상을 읽을 수도 있고 창조할 수도 있는 한국형 모델을 만들어 낼 수가 있을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사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09 20:0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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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14. 소금장수가 만드는 미래형 '컴팩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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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인터넷의 선조가 한국이라고 하면 아무리 국수주의라고 해도 웃을 것이다. 그러나 농담이 아니다. 어느 칼럼니스트의 말대로 "한국의 유통구조는 유럽처럼 수요자가 상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인이 수요자를 찾아가는" 형이다. "등짐.봇짐 장수가 소금이며 새우젓이며 메밀묵이며 박물들을 지고 이고 메고 이 마을 저 마을 가가호호"를 찾아다닌다. 주문도 받고 배달도 해준다.

거의 100년 전 폴 발레리는 "물.가스.전류가 집집으로 배송되는 것처럼 앞으로는 아주 작은 신호 같은 조작만으로 동화상이나 소리를 전달받아 그것을 마음대로 붙이고 떼고 지울 수가 있게 될 것"이라고 오늘의 인터넷 사회를 예견했다. 시인의 그 예리한 통찰력은 인터넷의 본질이 수요자가 상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인이 수요자를 찾는 배달문화라는 사실을 꿰뚫어 본 것이다. 그러기에 정보시대의 기둥 인텔이 내세운 기업모토 역시 "인텔은 배달한다(Intel Delivers)"였다.

한국의 시루떡 돌리기(2회)에서 인터넷의 정보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면 소금장수형 상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집안에서 쇼핑도 하고 비즈니스도 하는 디지토피어가 온다"고 목청을 높였던 미래학자들이 줄줄이 망신을 당하게 된 이유도 그 점에 있다. 광케이블의 빛의 속도를 타고 정보를 운반하는 인터넷이 설마하니 여우에게 홀려가며 외딴 산길을 찾아다니는 소금장수가 되리라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주문은 디지털로 하고 물건은 아날로그 경로로 배달되는 것이 인터넷 홈쇼핑의 본얼굴이다. '아마존 닷컴' 기업이 100년 적자에 시달리는 것도 의자 주문은 초 단위로 받고 그것을 싸는 데는 시(時) 단위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반은 19세기보다도 못한 주(週) 단위다. 바로 앞 가게에서 사오면 되는 물건을 천리 길을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 바로 첨단 정보화시대의 진귀한 유통구조다. 이것이 여우에 홀린 소금장수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택배, 퀵서비스, 심부름센터의 오토바이, 밴, 화물트럭들이 메토카르페의 법칙에 따라 길을 가로막는 고지라로 변한다.

이러한 인터넷의 부담과 위기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주문은 디지털로 하고, 물건은 아날로그로 근처 편의점에서 찾아가는 디지로그식 쇼핑 방식이다. 이 비즈니스 모델 덕분에 경쟁 업종 간에 윈-윈 전략이 생겨나고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이 하나가 되는 코피티션(copetition)이라는 경영학 신술어가 탄생한다.

그리고 미래학자들의 예상과 달리 분산되었던 교외 생활자들이 도심지로 U턴하는 컴팩시티의 21세기형 주거 생활양식이 태어나고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 상실한 거리감을 되찾자는 게다. 시간과 돈을 길거리에 뿌리고 다녔던 유목적 삶은 다시 산골 두메의 정주형 감각으로 전향된다. 아이들의 교육에서 주부들 쇼핑 가족의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아버지의 직장까지 올인원으로 한 정주 공간에 붙어 있는 컴팩시티, -옛날의 촌락 공동체처럼 생활의 활력이 살아나고 지속가능한 삶의 공간이 된다. 21세기 네오 노마드의 유목적 삶을 예언했던 자크 아탈리를 울리는 대목이다.

먼 미래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런던의 밀레니엄 돔을 설계했던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72)가 여의도에 70층짜리 쌍둥이 빌딩 파크 윈을 설계하면서 이런 꿈을 담는다. "사무용 빌딩과 호텔과 쇼핑몰이 한데 모여 있습니다. 일은 물론이고 다양한 여가활동까지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복합용도개발'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활동을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집적도시(compact city)형이므로 교통량을 유발하지 않는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소금장수의 배달문화가 만든 디지로그 문화 공간이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온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다음회는 '벽을 넘어서 - 번개 미팅'입니다

*** 바로잡습니다
1월 16일자 3면 '디지로그 시대가 온다' 기사 가운데 "그리고 운반은 19세기보다도 못한 주(周) 단위다"에서 한자가 잘못 표기되었습니다. 1주일을 뜻하는 '週'가 맞습니다. 또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의 합성어는 '쿠피테이션'이 아니라 '코피티션(copetition)'이 정확한 용어입니다.

2006.01.15 19:2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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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22. 몸으로 돌아오라 - 신체와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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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수신제가(修身齊家)라고 하면 귀를 막던 젊은이들도 몸짱.얼짱이라고 하면 금시 반색을 할 것이다. 신(身)은 몸이고 가(家)는 집이니 몸집 좋다는 말이나 몸짱이나 크게 다른 것이 없다. 다만 수신에서는 몸이 하나인데 젊은이들이 말하는 얼짱과 몸짱은 별개처럼 둘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몸 위에 붙은 수(修)라는 한자말도 쉬운 한자가 아니다. 한정된 지면에서 그것을 풀이하자면 아무래도 로마시대 평민의 반란군을 설득하기 위해 파견됐던 아그리파의 우화를 빌려오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먹고 놀기만 하는 위(胃)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킨 손.입.이빨 같은 신체의 구성원들에 대한 이야기다. 위를 굶겨서 굴복시키려고 그들은 서로 짜고 아무 음식도 제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를 굶길수록 자신들의 힘도 점점 빠져 쇠약해졌다. 그제야 그들은 위의 기능을 깨닫고 그 뒤부터 '한 몸'이 되어 열심히 일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기계문명은 아그리파의 우화에서처럼 몸이 해체돼 제각기 따로 노는 상태를 초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기계까지 안 가더라도 우리가 입고 있는 의상 자체가 실은 상체와 하체로 분할된 신체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셸 셰르의 표현대로 하자면 의상은 일종의 신체지도(身體地圖)다. 자연의 대지(大地)를 소유권에 의해 찢어 무수한 경계선으로 분할한 지적도(地籍圖)와도 같다.

인체의 감각도 미디어의 성격에 의해 흩어지고 분할된다. 음악 감상실에 들어가면 눈을 감고, 도서관에 들어가면 귀를 막는다. 시각문화와 청각문화는 판이하게 차별된다.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로 시청각을 통합한 새로운 멀티미디어 문화가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촉각.후각, 그리고 미각의 세계는 배제돼 있다. 그래서 질서 정밀, 그리고 직선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각 편중의 환경에서 살아온 현대인들은 후각의 80%를 상실했다고 말한다. 제러미 리프킨의 증언이다.

그런데 수(修)는 다스린다, 고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현대적으로 풀이하면 수신이란 반란으로 흩어지고 동강 난 몸들의 구성원을 아그리파의 우화처럼 '위'의 역할로 재통합해 다스리는 것과 같다. 한국말의 신체어가 다른 나라 말과 다른 것은 '머리' '허리' '다리'처럼 인체를 상.중.하로 3분할하고 있으면서도 '리'자 '항렬'로 연결하고 있다. 머리와 손과 발에서 갈라진 것들이 머리카락이요, 손가락이요, 발가락이다. 다른 나라 말과 비교해 보면 우리의 신체어가 얼마나 통합적인 의식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감각에 있어서도 "꽃이 피고 새가 우는"의 대중가요에서처럼 눈과 귀를 나란히 짝 지어 어우르는 경우가 많고 꽃구경을 가도 눈만 아니라 반드시 음식을 함께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어금니 정보 문화(1회 참조)도 그렇다. 꽃구경하는 사람보다 먹는 사람이 더 많은 그 불가사의한 광경은 바로 시각과 미각을 융합하는 공감각의 특성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후각 역시 유불선 3교에 두루 통한다. 향도(香徒)의 전통만이 아니라 한국의 제사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향화(香火)이고, 그것은 제주(祭酒)를 올리고 제사 음식을 음복하는 미각 문화와 융합해 이승과 저승을 잇는 미디어의 역할을 한다.

디지털 기술의 가장 큰 성과는 산업혁명 이후 제각기 흩어진 신체감각을 멀티미디어에 의해 통합시킨 점이다. 그러나 MP3로 압축된 디지털 음악을 유원지의 호러물 효과음으로 쓸 경우 아이들의 공포감이 떨어진다는 보고처럼 디지털 정보의 약점은 여전히 그 신체성을 드러낸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이 시대의 부름 소리는 "몸으로 돌아오라"는 새로운 수신의 '몸집' 문화다. 그래야만 디지털 정보는 시청각 편중에서 어금니로 씹는 통합적인 '위'의 정보 문화로 발전한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짜 '몸짱'문화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24 20:2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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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30. 엇비슷한 세상 건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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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엇비슷이라는 한국말을 알면 미래의 세상이 보인다. '엇비슷'의 '엇'은 '엇박자'의 경우처럼 서로 다른 것들의 이질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비슷'은 더 말할 것 없이 엇과 반대로 같은 것의 동질성을 의미한다. 이렇게 다른 것과 같은 것의 대립 개념을 하나로 결합시킨 것이 한국 고유의 '엇비슷'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엇'은 1과 0의 디지털과 같고 '비슷'은 일도양단으로 끊을 수 없는 연속체의 아날로그와 같다. '엇비슷'에서 '엇'만 보는 사람이 디지털인이고 '비슷'만 보는 사람이 아날로그인이다. 양자를 함께 보는 인간만이 디지로그의 미래형 인간이 된다.

디지로그형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시골 아이들에게 "너의 어머니 어디 가셨니?"라고 물어보면 안다. 일본과 중국 애들은 외출했다고 하고, 영어를 하는 아이들은 "쉬 이즈 아웃"(밖에 있다)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 아이만은 "나들이 가셨어요"라고 할 것이다. 나들이는 '나가다'와 '들어오다'의 대립어를 한데 합쳐놓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어머니의 외출은 '나가면서 동시에 들어오는 행위'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가출이다. '지금' '여기'의 시점에서 벗어나 차원이 다른 눈으로 보면 분명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은 하나다.

단군 할아버지에 대해 물어보면 이번에는 "곰이 사람이 돼 하늘님 아들과 결혼하는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명쾌한 것을 어른들은 그동안 얼마나 복잡하게 답하려고 했는가. 지상에 있는 곰은 '검'고 하늘의 환웅은 '환'하다. 곰이 동굴의 어둠이며 밤이라면 환웅은 빛이며 대낮이다. 곰은 낮은 땅에서 올라가고 환웅은 높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높고 낮은 것, 열린 것과 닫힌 것, 그리고 빛과 어둠이 결혼한 자리에 엇비슷한 세상 신시가 열린다. 너무 가까운 것끼리는 결혼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둠과 빛 사이에서 단군의 새벽은 탄생한다. 그리고 좁은 동굴과 무한한 하늘이 합쳐 아사달의 공간을 만든다. 그것을 우리 어린 것들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 곰이 사람이 되는 이야기다. 곰은 그냥 곰으로 있는 것(being)이 아니다. 무엇인가가 되는 생성물(生成物.becoming)이다. "내가 돌이 되면 돌은 연꽃이 되고 연꽃은 호수가 되고, 내가 호수가 되면 호수는 연꽃이 되고 연꽃은 돌이 되고"라는 미당의 시 구절은 영원히 생성되면서 순환하는 단군의 이야기와 같다. 밤이 아침이 되고 아침은 대낮이 되고 대낮은 황혼의 저녁이 되면서 밤이 된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사람을 평가할 때도 '사람이 됐다' '못됐다'고 한다. 한국 음식 역시 '있는 맛'이 아니라 입안에서 '되는 맛'이다. 씹어야만 비로소 싱거운 밥과 짠 김치가 한데 어울려 김치맛이 되고 밥맛이 '된다'. 그러니 누가 김치맛과 밥맛을 따로 분간할 수 있겠는가.

"군(君)다이 신(臣)다이 민(民)다이"라고 노래한 충담사(忠談師)의 안민가 역시 '되다'의 세계를 읊은 것이다. '다이'란 말은 '답다'로 '되다'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곧 '대통령다워진다'는 말이고 한국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한국인다워진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람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누구나 위급한 일을 당하면 "사람 살려"라고 외친다.

일본 사람처럼 그냥 '살려(助けてくれ)'가 아니라, 서양 사람처럼 '나 살려(help me)'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라는 것이니 어디에서나 통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다. 이 지상에는 천만 가지 구호가 있지만 한 마디로 줄이면 사람과 그것을 살리는 생명문제일 것이다. 사람을 살리면 디지로그 시대가 오고, 컴퓨터를 못하는 노인도 더 이상 구박받지 않는 세상이 '된다'. 젊음의 열정은 엔진은 돼도 방향을 잡는 키가 되기는 어렵다. 사이버의 본뜻이 '키잡이'이듯이 배가 좌충우돌할 때 희망의 땅으로 갈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기성세대다.

그러나 강을 다 건넜으면 타고 온 뗏목은 버려야 한다. '되다'는 말 못지않게 버리란 말을 잘 쓰는 한국인이 아닌가. 잊어버리고 놓아버리고 내버리라고 하지 않는가. 무거운 뗏목을 메고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혼하는 저 신시(神市)의 땅으로 갈 수 없다. 눈물 나게 배고팠던 이 민족에 경제성장의 기적을 만들어 준 자랑스러운 주역들, 짐승처럼 억압받고 살던 사람들에게 민주화의 빛을 밝힌 용감한 주역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을 버려야 또 하나의 새벽이 온다. 천방지축 달리는 위험한 아이들도 의젓한 어른이 '되어' 이 강가로 올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뗏목을 골라 강을 건널 것이다. 그날을 위해 나도 이제 이 글을 메지 않고 이곳에 버리고 간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디지로그’ 말말말

"디지털 세대들은 실제로 씹는 습관을 잃어가고 있다. 정보시대의 아이들은 클릭 하나로 삶의 문제들을 씹지 않고 삼켜버렸다." <1월 1일자 1회>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사람을 즐겁게 하는 악기로 반전시키는 것. 그것이 기술문명의 방향이요 희망이다." <1월 3일자 3회>

"이 지구상에서 농경-산업-정보 세 문명의 왕자를 동시에 데리고 사는 유일한 공주가 있다면 바로 한국인이 아니겠는가." <1월 4일자 4회>

"만약 우리의 뇌와 그 인지 시스템이 1이나 0 하나만 틀려도 절대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 디지털 언어로 돼 있었더라면 "문 닫고 들어오라"는 말을 절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1월 12일자 11회>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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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6. 자전거의 균형이 비행기 '원천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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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사람은 절대로 자기 몸무게보다 무거운 엔진을 달고 하늘을 날 수 없다고 미국의 뉴컴 교수가 선언한 것은 1900년의 일이다. 우주물리학의 권위자 스미스소니언연구소의 총재 랑그레가 정부의 지원 아래 제작한 그레이트 에어드롬기가 포토맥 강물 속으로 추락해버린 것은 1903년 12월 10일의 일이다.

그러나 바로 7일 뒤 오하이오주 디튼에 사는 자전거 제조업자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날고 말았다. 키티호크의 모래사장에서 프라이어 호는 12초 동안 17m를 분명히 활공 아닌 비행을 한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은 최고의 수리학이나 우주물리학으로도 못 해낸 것을 무명의 시골 자전거 점포의 라이트 형제가 발명한 의미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누구나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느끼는 것은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자전거의 기본기술이라는 점이다. 자전거가 두 바퀴로 굴러가려면 그 밸런스를 컨트롤할 수 있는 핸들과 페달 장치가 있어야 한다. 네 바퀴로 굴러가는 자동차와는 다른 점이다. 그런데 비행기 발명가들은 자동차에 날개를 달면 비행기가 되는 줄로 알고 있었다. 자전거 제조업자인 라이트 형제만이 비행기를 자동차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자전거로 생각했던 것이다. 마치 스필버그의 영화 'E.T.'에서 아이들이 보름달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몸체도 작고 자전거와 같은 핸들과 페달이 달린 프라이어 호를 만들어 이륙과 비행 시의 좌우 균형을 잡아주는 데 성공한다. 그뿐만 아니라 라이트 형제는 지상 실험을 할 때에도 자전거로 시뮬레이션 장치를 만들어 각종 데이터를 얻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라이트 형제의 이름과 연대를 외우는 교육만 받아 왔던 우리는 최첨단에 속하는 비행기의 발명이 약 150년 전 자전거의 로테크(low-tech)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사실을 모르고 지내온 셈이다. 디지로그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이제부터 가르쳐야 할 것은 모든 사물이나 생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자전거 타기와 같은 균형 컨트롤 기술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라이트 형제의 프라이어 호가 랑그레의 에어드롬기를 이긴 그 충격적인 의미를 밝혀주는 일이다. 랑그레는 정부의 요청에 따라 비행기를 만들려고 했지만(당시 스페인과 전쟁을 시작한 미 육군은 비행기와 같은 신무기가 필요했다) 라이트 형제는 자신의 꿈을 위해 그것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조인(鳥人) 릴리엔탈이 비행 실험을 하다 추락사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들은 비행연구에 열을 올렸다. 또한 랑그레가 비행 실험을 남에게 맡긴 데 반해 라이트 형제는 목숨을 걸고 직접 자신들이 시험 비행에 나섰던 것도 다른 점이다. 무엇보다도 라이트 형제가 랑그레를 이겼다는 것은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가족의 작은 조직이 워싱턴 정부의 그 거대한 관료조직을 이겼다는 것이며, 대당 180달러로 판 자전거의 이익금에서 떼낸 개발비용이 국가의 그 거액 투자액을 눌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라이트가 몸으로 익힌 노하우가 뉴컴 교수나 스미스소니언연구소의 탁상 지식을 앞섰다는 점이다.

당대 역사학의 최고 권위자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그 말을 뒤집으면 21세기의 시대적 특성은 그와 반대로 균형의 시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라이트 형제가 미래의 비행기에 자전거 핸들과 페달을 단 것처럼 우리는 현대의 디지털 기술에 주역의 중정(中正), 유교의 중용(中庸), 그리고 도교의 귀유(貴柔)와 같은 사상을 달아야 한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키워드인 사이버라는 말이 바로 뱃길의 밸런스를 컨트롤하는 그리스어의 키잡이[操舵手]란 말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05 19:5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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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시대가온다] 11. 컴퓨터와 인간의 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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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컴퓨터를 향해서 "야! 이 똑똑한 바보야"라고 호령할 수 있는 사람은 완고한 노인만이 아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보다 오히려 컴맹 쪽이 더 정상이다. 원래 인간은 아날로그적이고 컴퓨터는 디지털적으로 그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PC는 인간이 쓰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까다롭고 모양도 정을 붙일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러한 주장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미국 인지과학회 회장이었던 D A 노먼이 한 소리이다. 인간이 수백만 년 동안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생물적 진화'를 해왔다면 컴퓨터는 실험실이나 공장의 환경에서 '기계적 진화'를 수행해 왔다. 전기 스위치를 넣자 필라델피아 도시 전체의 가로등이 껌벅거렸다는 애니악의 그 집채만 한 컴퓨터가 단추만 한 건전지 하나로 움직이는 모바일 컴퓨터로 진화했다. 그런데도 자판만은 옛날 그대로라는 비웃음을 사게 된 것도 그 진화의 배경이 다른 데서 오는 비극이다.

컴퓨터와 인간을 연결시키는 인터페이스(자판)는 어느 한쪽의 진화만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영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A'자를 제일 작고 약한 새끼손가락으로 찍어야만 하는 바보짓을 대물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비극을 노먼은 "인간이 디지털 세계에 갇혀 있는 아날로그적 생물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자연 속에서 진화해온 인간은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고 끈질기다. 그런데 컴퓨터는 인간에게 엄격하고 딱딱하고 비관용적인 것을 요구하는 기계적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시스템이 전연 다른 인간과 컴퓨터는 상보적인 인터랙션 전략을 통해서만 공존이 가능하다. 교육헌장의 표현대로 우리는 '기술 중심의 제품에서 인간 중심의 제품'을 만드는 인류중흥의 빛나는 시대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노먼이 말하는 차세대의 '보이지 않는 컴퓨터'란 디지털의 컴퓨터와 아날로그의 인간이 서로 만나 디지로그의 유전자를 지닌 새 아이를 낳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어떤 컴퓨터인지는 모르나 자신의 저서 속에서 제시한 인지과학의 퀴즈문제를 풀어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문제는 대홍수 시대의 모세는 동물을 몇 쌍씩 방주에 넣었을까 하는 물음이다. 하지만 이 퀴즈의 어려움은 한 쌍이든 두 쌍이든 어떤 숫자를 대도 정답이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노아'를 '모세'라고 한 질문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웬만한 사람들은 속는다. 방주에 넣은 동물의 짝수에만 신경을 쓰다가 노아를 모세라고 한 잘못에 대해선 눈치를 채지 못한다. 인간의 두뇌는 컴퓨터와 달라서 큰 차이가 아니면 대충 넘어가도록 되어 있다. 모세도 노아도 모두가 구약시대의 인물이고 글자 수도 두 자로 돼 있어 비슷하다. 만약 모세가 아니라 '클린턴'이라고 했다면 금세 잘못을 알아챘을 것이다. 노아를 모세라고 잘못 말하는 것도 인간의 특성이요, 그렇게 잘못 말해도 그냥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것 또한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넉넉하고 관대한 인간의 인지력이야말로 생존에 필요한 귀중한 능력 가운데 하나다.

놀랍지 않은가. 만약 우리의 뇌와 그 인지 시스템이 1이나 0 하나만 틀려도 절대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 디지털 언어로 되어 있었더라면 "문 닫고 들어오라"는 말을 절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밥도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육안이 현미경의 시스템과 다르게 되어 있기 때문에 웬만한 균이 있어도 즐겁게 시원한 냉면을 먹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이어령 중앙일보사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11 20:4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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